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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20. 2020

혼자 맞는 죽음은 차고 시리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내가 간호했던 환자는 50대 후반의 남성이다. 그는 말기 간암 환자로, 구릿빛 피부였음에도 황달 증상이 심해 얼굴에서 누런빛이 감돌았다. 복수 때문에 그의 배는 볼록하게 솟아 있었고, 횡경막을 압박할 정도로 복수가 많이 차있어 걷고 나면 항상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팔다리도 심하게 부어 움직임 또한 매우 둔한 상태였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그를 간호했지만, 내게 그는 꽤 어려운 환자였다.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과 무미건조한 말투로 ‘아프니 진통제를 달라.’라고 차갑게 말하는 게 전부였다. 때론 각종 처치를 매우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였다.담담하고도 강직한 눈빛을 늘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는 항상 혼자였다. 보호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강직함이 도리어 외롭게 느껴지곤 했다. 또한, 그런 그를 간호하는 동안 그가 웃는 모습을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입원 기간 중, 그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여 간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터질 것처럼 차오르는 복수와 코끼리처럼 부은 다리 때문에 이제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 혹시 그가 낙상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몇 번이고 보호자가 옆에 상주해 있는 게 좋을 거 같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바로 흘려버렸고, 무심하게 괜찮다고만 할 뿐이었다. 담당 간호사가 바뀔 때마다 수차례 같은 말을 들어야 했을 테고, 며칠이 지나고서야 정말 귀찮은 듯 자신에겐 가족이 없다고 내게 말해 왔다. 자신을 돌보아 줄 누구도 없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 또한 아주 건조하게 전했는데 그의 말대로라면, 그는 ‘무연고자’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그의 기력은 떨어져 갔다. 처음 봤을 때 느껴졌던 강직함도 이제는 희미해져 버렸다. 나는 그가 불편한 몸을 혼자 이끌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항상 노심초사했고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꼭 그의 병실로 향했다.

“도움이 필요하면 꼭 말씀하셔야 해요. 절대 혼자 무리해서 움직이지 마시고요.”

다행히 그는 더 이상 나를 귀찮아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옅은 미소라도 지어 보일 만큼의 여유는 없는 듯 보였다.


그의 입원 기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더는 완화할 수 있는 증상이 없어 병원에서는 그에게 연고지 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권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 시간. 스테이션에 콜벨이 울렸다. 그의 병실이었다. 빠른 발걸음으로 그에게 향했다.


“뭐 도와드릴까요?”

“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콜벨 누르지 않으셨어요?”

내 물음에 몇 번이고 눈을 깜빡거리며 그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상황을 파악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뒤늦게 서야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버튼을 잘못 누른 거라고 설명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었다. 그는 현재 간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상태였고, 그래서 언제든지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었다. 의식의 변화가 있는 건지 확인이 필요했다.


그는 다행히 묻는 말에 정확한 답을 했고 아직은 의사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순간 머쓱히 웃어 보이며 “아, 자꾸 왜 이러지.”라고 말했다. 내게 헛걸음을 하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머쓱하게나마 웃음을 지어 보인 것이다. 그를 간호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서야 처음으로 보게 된 그의 웃는 표정이었다. 나는 연달아 괜찮다 말하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혹시나 이 작은 행동이 의식 변화의 전조증상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무연고자로 알고 있던 그에게도 실은 가족이 있었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형 전화번호가 환자 정보에 기록되어 있었다. 도저히 환자를 혼자 두는 것은 아닌 것 같아 그의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홀로 거동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에다가 언제 갑작스럽게 의식이 저하될지 모른다, 간호사가 계속 옆에 있을 수가 없다, 보호자가 상주해야만 한다.’고 전해보았지만, 그의 형은 올 수 없다고 말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말투였고 상태가 악화하면 그때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네? 상태가 안 좋아지면 연락 달라고요?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너무 무책임한 발언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그의 상태가 더 악화한다는 건 애석하게도 죽음밖에는 없었다. 대체 어떤 연유로 그들의 관계가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토록 냉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화난 감정을 추슬러야 했다. 그렇게 나의 이브닝 근무는 끝이 났고 나이트 간호사에게 특히나 그를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인계를 주고 병원을 떠났다.


다음 날 오후, 다시 출근을 했고 내게 인계를 주게 될 간호사는 평소와 달리 무척 지쳐 보였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느냐며 그녀가 내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듣자 하니, 어제 퇴근하기 전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 일어나고야 만 것이다. 새벽녘부터 그의 의식이 완전히 이상해져 침상에서 혼자 내려오려고 해 병동이 난리가 났다고 했다. 수차례 보호자에게 전화했지만, 그의 가족은 마지못해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오겠다고 한 것 같았다. 환자와는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았고 과도하게 움직이는 상태였기 때문에 담당 간호사는 새벽동안 그의 침상 옆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내가 그를 다시 봤을 땐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겨우 정상 산소 수치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눈을 맞추는 것도, 몇 마디 나누는 것도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그는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의식이 명료했을 땐 복수 때문에 반듯이 눕지를 못해 거의 앉은 채로 잠들곤 했었는데, 낮춰진 침상에 이제야 반듯이 누워 있었다. 아마도 어제 내가 퇴근하기 전, 그가 미안한 마음에 내게 웃어 보였던 미소가 그의 마지막 미소일 듯했다. 그가 삶의 끝자락에서 지어 보인 어색한 미소를 가족도 친구도 누구도 아닌 내가 보게 된 것이다.


뒤늦게 가족들이 찾아왔다. 의식이 없는 그를 바라보며 가족들은 그제야 한껏 안쓰러운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이미 교감할 수 없는 상태에 찾아온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이젠 아무것도 없었다. 애초에 가족들은 그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고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는 이제야 혼자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외로워 보였다.


코와 입을 통해 나오는 피거품을 흡인해 제거하는 것, 혈압이나 맥박 및 산소 포화도에 변화가 생기는지 관찰하는 것, 수액과 진통제를 투약하는 것 등. 그에게 작은 진심을 담아 그 모든 처치를 해나갔다. 그가 마지막으로 떠나는 길이 조금이나마 덜 외로울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뒤늦게 찾아온 가족들보다 내가 더한 마음을 쏟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보호자의 말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보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래가는 듯 보이자, 보호자인 형은 내게 그의 임종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없느냐고 물었다. ‘빨리 죽게 할 수 없느냐.’는 말이다. 비록 의식이 없을지라도 혹시나 환자에게 이 말이 들렸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그가 누워있는 치료실과의 거리를 가늠하고선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조차도 환자를 ‘곧 죽을 사람’으로 취급하며 임종만을 기다릴 순 없었다. 내 안에는 그와 짧게나마 나누었던 교감의 기억들이 있다. 그의 말투 그리고 표정까지 의식을 잃기 전, 그의 마지막 모습이 아른거렸다. 특히나 마지막으로 보인 머쓱한 미소가 내게 계속 떠올랐다.


그가 누워 있는 치료실엔 묘한 고독감이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그의 삶은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산소 수치와 혈압이 천천히 저하되고 있었다. 이제 그가 편히 생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가족들이 와 계시는 거 알고 계시죠, 외롭지 않게 가세요. 고생많으셨어요.

 

마음속으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가 살아생전 의식이 있을 때 가족들이 찾아와 줬더라면 어땠을까. 그의 곁을 조금 더 일찍 지켜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담담하고, 강직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그의 표정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게 그는 가족이 아니라 간호사인 내게 마지막 미소를 남긴 채로 임종했다. 그의 마지막 미소를 내가 기억하게 된 것이 괜스레 미안했다.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운 죽음은 너무도 차고 시리다. 삶의 마지막 순간, 진심으로 나를 추억해 줄 누군가가 내 곁을 지켜준다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좋다.


당신에겐 생을 떠난 후 진정으로 당신을 추억해 줄 누군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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