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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경 Jan 20. 2020

죽음을 처음 본 날

유명(幽明) ; 어둠과 밝음,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는 일. 간호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나는 원치 않게 임종 과정을 자주 지켜봐야만 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죽음에 대해 슬픈 기억이 있어 죽음은 꼭 피하고 싶었던, 실로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죽음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담당 환자가 처음으로 임종했던 순간을 절대로 잊을 수 없다. 당시 나는 신입 간호사였고 환자는 세 자녀의 엄마였다. 얼굴 크기와 맞먹는 산소마스크에 의존하여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던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다.


‘과연 내가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잘하지 못했다. 환자의 죽음을 처음 봤을 때, 마치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 같은 큰 충격에 빠졌다. 살아있던 사람이 죽는다는 게 이렇게 순식간일지 몰랐다.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에 맞닿아 있었다는 걸 정말이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의 굳어버린 몸은 시간이 갈수록 핏기가 사라져 갔다. 그런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만져야만 했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야 했다. 그녀의 죽음을 직시할 자신이 없던 내 시선은 그 순간, 그녀를 최대한 피해 보려 본능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무방비했던 충격의 여파가 약간 사그라들자, 그녀의 주검 앞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슬픔마저 느껴져 왔다. 죽음은 찰나였고 그래서 허무했다.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책장 하나가 스르륵 넘어가듯, 한 생명이 서서히 죽음에 닿는 모습은 참으로 허무하게 느껴졌다.


강렬했던 첫 경험을 뒤로한 채 퇴근하는 길, 내겐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열두 시간 넘는 근무로 몸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검의 잔상을 지워내기 위해서라도 내겐 새로운 뭔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담당 환자의 죽음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그 날은 추운 겨울날이었다. 때마침 내리던 눈을 가로질러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한강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충동때문이었을테다.



그 순간 나는 어떻게든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쏟아지는 눈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내게 차가움이 느껴졌다. 그 차가움은 다행히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래, 나는 살아있다.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는 존재다.


육신의 피로감을 이겨내며 한참 동안 기숙사 주변을 맴돌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잠들고 싶지 않았다. 잠들어봐야 어차피 병원 꿈을 꿀 게 분명했다. ‘죽으면 평생 잠만 잘 텐데.’라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생생한 죽음의 잔상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무서워서 잠자리에 들 수 없던 게 더 정확하다.


충격적인 첫 경험 이후, 이곳 병원 생활을 해 온 시간이 적잖이 흘렀다. 그러면서 어쩌면 죽음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지도 모른단 걸 알게 되었다. 어느덧 죽음을 보는 것에 나는 이미 적응해 있었고 절대로 적응할 수 없을 것 같던 이 곳 병원마저 내게는 이제, 당연한 일터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감정과 생각은 죽음 앞에 점점 무뎌져 갔다. 매일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는 타인의 죽음만큼이나 환자의 죽음에 점점 감흥이 사라져 갔다.


환자와의 일정한 ‘거리 두기’도 이제 가능해졌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환자의 죽음이 나에게 더는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임종이 가까워져 오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담담하게 전달할 줄 알게 되었다. 최대한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환자를 위해 최선의 액션을 취할 수도 있었다. 환자가 임종하고 나면 사후 처치라는 것을 행하고 마지막으로 여러 행정적인 업무까지 능숙하게 처리했다. 병원이라는 환경 속에 꾸역꾸역 두 발 담그고 있다 보니, 죽음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현실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현실이 되고야 만 죽음은 어느 순간부터 내게 객관적인 대상으로 다가왔다. 한숨에 꺼지고 마는 촛불처럼 허망한 것이 바로 죽음이었다. 반복적으로 이 허망함을 경험하며 ‘죽음이란 대체 무엇일까.’란 질문 또한 품을 수가 있었고, 자연스레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었다. 생사의 경계에 선 환자들을 간호하며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생각이 살아 숨 쉬게 되었으며 그래서 이 살아있는 소중한 순간들을 허투루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무언가를 해드릴 수 있었다는 건 내게 정말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부디 나와 함께 했던 환자와 환자의 가족들이, 마지막 순간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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