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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른이 Jan 06. 2021

'엄한 아빠'라서 미안해

눈싸움도 못 시킨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설에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다음 날 출근길 걱정이었다.


특히 서울 시내를 출근하는 나보다는 경기도 외진 곳으로 차를 몰고 출근할 아내가, 아이들 발에 맞는 부츠도 미처 준비하지 못해 폭설 후 찾아올 혹한 속에서 고생할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그래서 퇴근 후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이들 인사는 받는 둥 마는 둥 집 앞 눈을 치우러 나섰다. 


그렇게 한참을 눈을 치우고 있는데 눈치 없이 골목 경사에서 눈썰매를 좋다고 타는 부녀가 눈에 거슬렸다. 

'저러면 다 얼 텐데... 눈도 안 치우고 매너 없이...'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울 생각은 않는 그 부모가 마뜩지 않게 보였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늦은 시간임에도 어느새 주변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나온 듯 곳곳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이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가족의 '안전'을 위해 눈을 '치우는 것'이 우선이라 그 광경을 모른 척 한층 더 열심히 눈을 쓸고 염화칼슘을 뿌렸다.


하지만 염화칼슘을 뿌리면서도 내심 '이 눈이 다 녹고 나면 우리 아이들은 이 눈을 못 볼 텐데...'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이 하얀 눈이 쌓인 그 위를 뽀드득 발자국을 내는 기분과 하얀 골목길을 바라보는 원초적인 행복감을 느낄 기회를 박탈한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치우고 집에 들어와서도 늦은 시간과 눈싸움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을 하던 아빠는 결국 다음 날을 위해 아이들을 재우는 것을 선택하고 말았다. 늦은 시간 눈싸움을 하고 들어와 씻고 정리하고 잘 엄두가 나지 않았고,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릴까 두려웠고, 다음 날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빠듯하게 출근을 할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일상'에 치인 아빠는 아이들과 '낭만'과 '추억'을 남길 기회를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을 보고 싶은 열망은 그리 쉬이 잠들지 못했고, 나가서 눈을 보고 싶다는 아이들을 애써 달래며 재우다 결국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런 아빠에게 서럽다며 입을 삐죽이다 잠들었다.


막상 그렇게 조용한 밤이 찾아오자 밀려오는 것은 편안함이 아닌 '미안함'이었다. 왠지 아이들에게 너무 엄격하게 군 것은 아닌지, 조금은 놀게 했다고 딱히 일이 잘못됐을 것 같지도 않은데 결국 내가 편하고 싶고 귀찮았던 것은 아닌지 후회스러웠다.

부모라는 역할은 단지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그들의 정서가 풍부하고 커나갈 수 있게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 텐데... 바쁜 일상에 치여 여유를 잃고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기계적인 부모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여전히 밖에서 들려오는 눈 쓰는 소리,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는 미안함을 더욱 키웠다.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내일 등굣길에는 조금은 눈 장난을 할 수 있게 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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