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반복되면 계시다.
작년 말, 회사에서 실시하는 정기 건강검진일.
밀려오는 오전 업무를 정리하다 인사팀의 재촉에 급하게 검진 장소로 향했다. 검진 중 하나의 과정으로 몸무게를 재야 했는데, 최근 꾸준히 운동도 하고 근육도 늘었다고 생각했기에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을지 내심 기대하며 올라섰다.
하지만 현실은 87kg으로 역대 몸무게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었다. 이미 고도비만을 향해 가고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짜증이 밀려 올라왔다. 업무에 복귀한 후에도 늘어난 몸무게가 영 신경 쓰인다.
연말, 연초를 맞아 고등학교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만났었다.
거의 2년 만의 만남이었기에 잔뜩 기대하며 자리로 나갔고, 역시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것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실없는 농담과 나이 들어감에 대한 소회를 나눴다. 우리는 많은 주제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고 그중에는 건강과 몸무게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이 되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우리 중 비만을 걱정하는 것은 나 혼자 뿐이었고, 다른 친구들은 40대임이 무색하게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살을 좀 빼고 먹는 것을 줄이라는 친구들의 타박이 귓가에 맴돈다.
안 그래도 바쁜데 한층 더 업무가 몰려 정신없는 연초 어느 날 오후 사무실 한편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전화통화, 업무보고, 직원 간 잡담이 뒤섞인 사무실은 원래 조용한 곳은 아니었지만 그 웅성거림은 '톤'이 달랐기에 자연스레 눈길이 향했다. 알고 보니 같은 건물의 한 직원이 업무 중에 책상에 앉은 채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올해로 48세 밖에 되지 않은 직원이 '억'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한 채 쓰러진 것이다.
불과 오늘 아침에 흡연장에서 인사를 하고 수다를 떨었던 직원이 단 몇 시간 만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알진 못했지만 회사 내에 그 직원을 아는 사람이 더러 있었는지 직원들 간에 수군거림은 쉽게 잦아들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의외로 4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에 그런 심장마비가 많다고 한다. 올해로 41세가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왠지 남의 이야기 같지가 않다.
주말에 곧 있을 설 차례 준비에 대해 의논도 할 겸 인사차 어머니 댁에 들렀다.
만난 지 1분이나 지났을까? 살이 쪘다며 어머니의 잔소리가 날아든다. 밑도 끝도 없는 잔소리에 짜증이 솟구친다. 평소라면 그냥 한 귀로 흘려보내고 말았을 텐데 괜히 짜증이 솟구쳐 버럭 한 소리를 내뱉고야 만다. 그래 봐야 어머니 잔소리만 한층 더 높아질 뿐이지만.....
듣기 싫은 마음에 돌아 나오려는 데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이 눈에 걸린다. 아버지는 65세, 아직 한창인 나이에 운전 중 심근경색으로 1년을 식물인간처럼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새삼스레 신경이 쓰인다.
주말 저녁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노라니 와이프도 심심한지 다가왔다. 침대 앞에 걸터앉은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와이프가 내 배를 보며 타박을 시작했다. 살 좀 빼라고. 그러다 죽겠다며 올해는 건강검진을 받고 심장 초음파 검사도 하고 예방약도 먹어야겠다는 것이다. 괜한 마음에 발끈했지만 옆으로 탄력 없이 늘어진 뱃살을 보고 있노라니 말문이 막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다이어트를 해야만 하는 시점이 된 것이 아닐까?
그동안은 일, 육아, 취미를 병행하다 보니 정말 시간이 없었고, 먹는 것을 줄일 자신이 없었기에(정말 많이 먹고,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편이다.) 다이어트를 후순위로 미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건강과 생존을 위해 다이어트가 무엇보다도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내장지방이 옹골차게 들어찬 복부를 보니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다이어트를 미룰 이유도, 하지 못 할 이유도 없어졌다.
20대 초반 때 헬스에 한 3년 정도 매진했었기에 기본적인 운동 방법과 식이 조절 방법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알기 때문에 언제든 뺄 수 있다는 자신감에 그렇게나 방치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의지와 계획뿐이다.
그렇게 '생존 감량'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