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시간 Feb 10. 2023

이별 후 2주

운동을 다녀오는 밤, 문득 아무 생각 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나를 발견한다. 분명 밥알이 목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까슬거린 느낌이 들어 삼키지 못할 때도 있었고 이대로 침대 안으로 내 몸이 들어가 흔적 없이 조용하게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스스로 불쌍하다 여기며 지독한 자기 연민으로 온몸을 휘감은 적도 있었다.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볼만큼,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릴만큼, 내가 믿었던 가치들이 맞는 건지 조차 의문이 드는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져있었는데...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가벼운 마음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다니!


아마 지독하게, 정말 지독스럽게 당했기 때문일까. 차라리 전남편이 나았다고 생각이  지경이니 지난 연애가 나에게 남긴 것은 항상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처연한 사실뿐이다. 이제는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연애가 무엇인지, 결혼이 무엇인지 더더욱 모르게 되었고 한동안은 알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증오도 미움도 사랑도 떠나간 자리에는 공허함만이 남아있고 이 공허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서성거리는 내가 있다. 바람을 피운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이제는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해서 꼭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복수심을 원동력으로 삼아 살아가기도 싫다. 어차피 맞지 않는 사이였고 고작 몇 개월 만난 사이에 어떤 의미도 두고 싶지 않다. 그런 것에 의미를 두고 찾아나가기에 나는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단지 앞으로 나는 치열하게 무언가를 고민해야 할 것만 같은데 어떤 종류의 고민을 해야 하고,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서성거릴 뿐이다. 앉지도 걷지도 서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로 서성거린다.


누군가를 마음껏 좋아했다는 경험만으로 충분했다고 여기면 그뿐인데 그것조차 쉽지 않으니 이 사안을 내가 어떻게 소화시켜야 하는 건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35살쯤 되면 이런 고민은 쉽게 핸들링할 수 있을 정도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보면 더 이상 무얼 확신할 수 있을까. 이 경험을 하기 이전으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을 확신할 수 있다. 이별이 이 혼돈을 만들어낸 건지, 이 혼돈에 내가 스스로 빠지고 싶어 빠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사람의 흔적을 찾거나 소식을 듣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별 후 첫날 전화번호를 지웠다 차단했다 해제했다를 반복하던 나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건 곁에서 위로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로를 해주던 사람들의 의도와 목적에 상관없이 나에게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가 다시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또다시 이런 이별이 반복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모든 종류의 이별을 반성하며 교훈을 찾아낼 수는 없다. 당분간은 관조적인 태도로 세상과 사람과 사물을 봐야겠다. 빠른 회복이 빠른 치유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니 어느 하나 서두를 것이 없다. 그래도 결심한 사실 하나는 사람간에 교류를 하고 관계를이어 나갈 때에는 존중, 신뢰, 배려를 바탕으로 편안함을 만들어나가야겠다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까지 피울 필요는 없었을텐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