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을 하고 간호사가 "아이 손가락, 발가락 확인하세요" 라며 눈앞에서 손가락, 발가락을 하나씩 보여주며 헤아리던 장면이 생생한데 아이는 어느덧 10살이 되어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에 양발을 걸치고 있다.
친구를 집에 초대해 이것저것 소개하며 으스대기도 하고 친구와 간식을 나누어 먹고 오카리나와 리코더로 합주를 하며 깔깔거리기도 한다. 탕후루를 먹다가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난다며 나에게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전화하기도 하고 엄마는 도대체 내 마음을 이해하기는 하는 거냐고 소리를 꽥 지르고 문을 쾅 닫아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매일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친구처럼 하루의 희로애락을 나누기도 하고 어두운 게 무섭다며 손을 꽉 잡아달라고 하기도 한다. 자신이 그린 그림 중 어느 게 잘 그렸냐고 묻기도 하지만 아이가 쓴 글의 맞춤법이 틀려 지적하면 보지 말라며 노트를 뺏어 덮어버리기도 한다. 샤워 후 뒷정리가 되지 않아 욕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고 벌써 속옷을 착용하고 몸과 마음의 변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기도 한다.
자기 전에 대화를 하다가 "아이가 엄마의 첫사랑은 언제야?"라고 물은 게 며칠 전 일이다. 유치원 때도 종종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성의 감정보다는 우정의 감정이 컸으리라. 하지만 이제 10살 아이는 '사람 간의 감정'영역이 세분화가 되어 아직 그 깊이는 얕을지 몰라도 그런 것쯤은 구별하게 되었다. 나의 첫사랑은 언제였는지,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은 있는지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딱히 사랑했던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 곤란해하자 아이는 그 머뭇거림조차 의문인지 자신의 아빠를 사랑했었는지 뒤이어 묻는다. 나는 그조차도 간단하게 툭 대답이 튀어나오지 않아 난처한 표정만 짓고 있다.
아이는 엄마에게서는 답이 나오지 않겠다 여겼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작년에 같은 반인 남자아이였고, 복도에서 종종 마주친다고 한다. 좋아하는 이유는 또래 남자애들같이 허튼 장난을 치지 않아서라고 한다. 작년에는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여자친구가 있는지 몰라 곧 물어봐야겠다고 하고선 다음날 그 남자아이가 아직 여자친구가 있다며 나에게 이야기한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묻자 "너는 요즘 누구랑 제일 친해?"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남자아이가 "000이랑 친하고 내 여자친구랑도 제일 친해."라고 대답해서 여자친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10살 아이의 에둘러 말하는 능력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여자친구가 있으니 자신은 이제 짝사랑을 그만하겠다고 깔끔하게 종결을 짓는 모습까지 완벽하게 귀여웠다.
그 후로 일주일 뒤 새로운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며 이야기하기에 그 아이랑 있었던 일화를 자못 진지하게 들어주며 그 아이와 사귀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봤다. 자신은 쌍쌍바를 정확하게 반으로 아주 잘 가를 수 있다며 쌍쌍바를 나누어 먹을 거라고 하였다. 하고 싶은 게 손잡기도 아니고 같이 소풍을 가는 것도 아니고 고작 쌍쌍바 나누어 먹기라니. 딱 10살만큼 크고 있는 아이의 순수한 사랑에 응원을 보내며 아이에게 곧 대답해주어야 할 사랑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