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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Aug 23. 2023

아이의 마사지를 받다가 눈물이 났다.

샤워 후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다 바람이 문득 차갑게 느껴지는 여름의 끝자락에 아이와 올해 마지막 물놀이를 다녀왔다. 물놀이가 끝난 후 내년 물놀이를 위해 용품들을 깨끗이 닦고 말리고 정리해 보관해야 하는 고단함을 모르는 아이는 신나게 이것저것 챙겼고 우리는 출발했다. 참방참방 물놀이를 하는 아이와 물 표면에서 반짝이는 햇빛, 그 위의 공간을 채우는 아이의 웃음소리. 모든 게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 덜 마른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채 잠든 아이의 모습이 룸미러에 보일 때마다 오늘도 '나는 너를 키우느라, 너는 크느라 고생했다'라고 생각하며 집에 도착했다. 이런 날이면 내 역할 중 하나라도 가득 채워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지금까지 아이와 나와의 관계,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떠올린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아이가 주는 고단함만큼 커진다. 내 삶을 일부를 떼어 희생을 하는 만큼 크는 아이를 보며 더 해주지 못해 죄책감, 더 이상 할 수없음을 깨달알았을 때의 좌절감을 몇 번 거친다. 몇 번을 반복하다 보면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다는 현실의 여러 가지 요소를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는 아이의 우주가 전부 나였던 시기가 지나고 아이도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 친구가 많이 생겼기에 나도 나의 하루를 온통 아이에게만 쏟아붓지 않으려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집에 도착했고 물을 한가득 머금은 짐을 손에 쥐고 잠든 아이를 깨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다. 양손에 가득 찬 짐 때문에 올라가지 않는 손가락을 겨우 올려 집의 층수를 누른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사이 무거운 가방 손잡이에 짓눌려 빨개진 손목에는 눈길을 줄 시간도 부족하다. 도착하자마자 세탁물은 세탁기에, 손빨래할 것들은 세탁실에, 물놀이용품은 욕실에 두고 아이에게 씻으라며 채근한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침대에 뻐근해진 허리를 누이고 기지개 켤 힘도 없어 축 늘어져있는 나에게 아이가 로션을 가져온다. 베개 위에 내 손목을 올리고는 마사지를 해준다. 그러더니 어디선가 조명도 가져와 불도 끄고 머리맡에는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음악도 틀어준다. "엄마 발아, 우리 엄마를 좋은 데로 데려가줘라. 엄마 눈아, 우리 엄마 아름다운 것만 보게 해 줘라" 내가 아이가 어렸을 때 로션을 바르며 마사지를 할 때 해줬던 말을 그대로 읊는 아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내가 그런 말을 해줬던 순간의 어린아이 모습이 영사기로 띄운 것처럼 스쳐 지나가며 내 눈에는 감동이 어린다. 


내가 아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이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였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눈물도 났다. 로션으로 범벅이 된 손으로 눈을 닦다 눈이 아파 운 건지도 모르겠다. 범상치 않은 감동이었다고 포장하기도, 이 감정을 몇몇의 단어로 표현하기도 싫다. 그냥 그 자체로 위로였고 보상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감동한 모습에 뿌듯했는지 요일별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표를 만들어 벽에 붙여놓고 잠이 들었다. 로션의 끈적함이 배어있는 몸을 옆으로 돌려 자고 있는 아이를 쳐다본다. 너와 내가 나누는 이 감정이 훗날 또 어떤 추억으로 남을지 기대된다고 말하며 아이의 볼을 쓰다듬는다. 아이가 놀다 다친 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며 오늘도 열심히 놀며 세상을 배우느라 고단했을 아이의 팔과 다리를 주무르고 나도 잠에 든다. 이렇게 행복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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