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대학원 동기의 집에 놀러 갔다. 대학원에 입학한 게 9년 전이고 졸업을 한 것도 한참 전 일이니 이렇게 만남을 가진 일도 참 오랜만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기는 벌써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세 살이 된 것도 놀라운데 100일이 된 아기까지 한 명 더 있었다. 당연하게 이전과는 만남의 장소도 풍경도 너무나 달라졌다.
대학원을 다니던 때가 내 아이가 1살부터 3살 때 까지였는데 그때 내가 했던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고 말하는 동기 앞에서 나는 이제 10살이 되어버린 딸을 쳐다본다. 10살이 된 아이가 3살이 된 아이와 함께 방에 들어가서 놀아준다. 배려 깊은 내 아이와 언니를 잘 따르는 동기의 아이가 방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내 시선은 100일 된 아이의 발가락의 움직임을 따라간다.
이내 칭얼대는 아이를 안으며 달래주려 하지만 아이를 안는 방법을 까먹은 나는 내가 안아주자 불편해서 더 크게 우는 아이에 더해 손목이 아파 이내 포기한다. 하지만 동기는 아이를 번쩍 안아 안정된 자세로 아이를 앉고 능숙하게 달래준다. 꾸미는 것을 좋아했던 동기가 티에 바지만 입고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기에는 숭고하고 초라하다고 말하기에는 풍족해 보였다. 딱 하나 어떻다고 꼬집어 형언하기 힘든 상태는 아마 육아의 고단함과 꼭 그 고단한 만큼 주는 아이의 행복 둘 다를 느껴봤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밥을 먹을 때는 더더욱 힘들었다. 내가 어떻게 저만한 아이를 키웠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첫째는 스스로 먹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사방팔방에 음식을 흘렸고 배가 차자 소파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없었는데 둘째는 분유를 달라며 울었다. 내 아이도 지쳤던지 두시 간 남짓 동생이랑 놀아주다 힘들다며 드러누워버렸다. 첫째라도 내가 봐주면 동기가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중간중간 물을 찾는 첫째와 분유를 먹은 둘째의 트림까지 어느 것 하나 엄마의 손길이 가지 않는 것이 없었으므로 큰 도움은 못되었다.
그러다 정신이 없었는지 아이가 남긴 밥에 아이가 먹던 숟가락으로 먹는 동기를 보면서 양육을 하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치열한 삶을 산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치열을 아무도 알아주지도 기억하지도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심지어 아이를 길렀던 나조차 이런 모습을 볼 때나 겨우 그때의 내 모습이 생각나는 정도이니 말이다. 어떤 식으로 보내든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커간다. 그렇다고 지금이 편하다는 이야기를 하는것은 아니다. 양손과 발은 자유로워졌지만 아이의 학업이나 정서에 관해 신경쓸 부분은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냥 아이를 기르는 모든 사람들이 육아에 지쳐 모든 것을 놓지 않기를 바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찾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