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관문, 협의이혼의사 확인 하기

숙려기간 3개월이 지난 후

by 단시간


협의이혼절차를 모두 마쳤다. 전날까지는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혀 침울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니 그냥 처리해야 할 일처럼 여겨졌다. 그냥 빨리 처리하고 싶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20분 정도 먼저 도착해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우리말고도 협의이혼의사 확인을 받으러 오는 많은 부부들이 와있었다. 남편은 늦게 오거나 딱 맞춰 올 것을 알았기에 어떻게 기다려야 하나 고민하며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협의이혼의 마지막 절차까지 와서 협의에 이르지 못해 쌍욕을 하며 싸우는 사람도 있었고 애틋한 듯 서로를 위로해주는 부부들도 있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서로에게 남은 감정이 아무것도 없이 버석버석하게 말라버린 우리보다는 나아 보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드디어 25번이 불리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25이다. 하필 우리가 오늘 부여받은 번호도 25번이다. 협의이혼의사를 확인받기 전에 1번, 7번, 13번... 24번, 25번 순서대로 부른다. 25번에 손을 들며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 본다. 신원을 확인하고 양육권, 친권, 양육비, 면접교섭 내용을 확인한다. 짧게 대답을 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구청으로 향한다. 구청에 이혼 판결 등본과 확정증명서를 제출했다. 우려와는 달리 낙담하거나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그냥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의 일처럼 느껴졌다. 한편에서는 혼인신고를 하는 부부들이 있다. 물끄러미 쳐다봤다. 혼인과 이혼을 한 창구에서 처리하다니.. 행정적인 편의가 이토록 날카롭게 다가올 일인지.. 참으로 잔인하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장을 보고 집에 들어가는 길. 나도 모르게 차에서 "만세!!!!!!!! 자유다!!!!!!"를 외치고 액셀을 밟는다. rpm이 쭉 올라가며 해방감이 느껴진다. 자주 보지도 않는 그 서류가 무엇이라고 그 무게를 새삼스레 깨달았다. 그간 그 서류 몇 장에 짓눌려 갑갑했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고 집으로 가며 살아있음에 안도하고 그래도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음에 안도한다. 이혼이 나에게 남긴 건 바닥이 바닥이 아닐 수 있다는 현실 직시 능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 바닥을 치고 반동삼아 올라가야 한다는 회복력이 아닐까. 고생한 나를 다독이며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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