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재산분할의 과정

by 단시간


우리는 이혼을 예견하듯 경제권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초반에는 같이 할 미래를 꿈꾼 적도 있어 같이 관리한 시기도 있었으나 자신의 돈은 자기가 쓰고 싶다는 남편의 지속적인 요구에 결국은 따로 쓰게 되었다. 아마 전남편 본인의 의지에 더해 시어머니의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지속적으로 남편에게 내가 돈을 어떻게 쓰는지 감시하며 나에게 돈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전남편에게 주지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 내내 다른 여자도 아니고 시어머니와 경쟁해야 하는 느낌은 나를 더 남편에게서 멀어지게 했고 여러 이유와 더불어 우리는 처음에 예견했던 대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내가 결혼생활 내내 모은 돈이 라고는 현금 4,000만원이 전부였다. 이제 정말 이혼을 하려고 보니 냉엄한 현실이 내 몸 사이사이를 통과해 온몸이 시렸다. 당장 이 돈으로 아이와 살 집을 구하고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약간은 꿈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꿈을 꾸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지속적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있었고 하루빨리 '너만 이 집에서 나가면 된다.'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현실이 마땅한 건지, 내가 버텨내야 할 바닥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게 너무나 시급했다. 변호사 2명과 상담을 했고 각각 상담한 양육비나 재산분할의 금액이 달라 2명의 의견에 평균을 낸 금액을 내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또 인터넷을 찾아보며 양육비 산정기준표를 보며 내가 받을 수 있는 양육비를 계산했다. 하지만 정확한 남편의 재산도, 월급도 모르는 상태에서 계산을 하려니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해야 해서 결국은 무엇도 정확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쨌든 협상의 테이블 위에 앉았고 전남편에게 내가 생각하는 양육비와 재산분할 금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전남편의 반응은 황당했다. 이혼 요구를 해놓은 것은 본인이면서 지금 이 사태가 너무나 황당하다는 것이다. 양육권, 양육비, 재산분할, 면접교섭 등 상의해야 할 것들을 한가득 적어놓고 수십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한 나와 달리 남편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혹시나 했던 우려가 역시나가 되자 이제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한 번 실망을 했다. 항상 사태가 닥치면 알아보고 처리하고 조율하는 쪽은 나였다. 이 자리에서 마저 저렇게 대책이 없는 사람으로 만든 건 문제를 정확하게 해결하지 않고 어영부영 자신의 뜻대로 넘어가버리는 남편을 항상 용인해준 내 탓일까. 그러다 그 문제가 터져버리면 혼자 묵묵하게 처리를 한 내 탓일까.


결국 비장하게 끝내리라 마음먹고 시간을 내었던 자리는 무산되었고 남편도 알아볼 시간을 주었다. 역시나 남편은 내가 제시한 금액을 거의 2/3 수준으로 줄여버렸다. 그러던 중 아는 지인을 통해 남편의 월급을 거의 정확하게 알었다. 남편에게 월급과 재산 내역을 정확하게 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별다른 소득없이 끝까지 정말 끝까지 거짓말을 하는 비열함만 확인하게 되었다. 인정에 호소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수치를 제시하며 합리적으로 이야기해보려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역시 내가 생각한 바닥은 바닥이 아니었다. 한층 한층 바닥을 허물며 지하로 눌러져 내려가는 나의 모습은 누가 봐도 불쌍해 보였으리라. 내가 멍청해서 그렇게 합의를 한 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다. 이혼을 안 한다고 버틸 수도, 악을 쓰고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도, 남편의 말대로 소송에 가서 시시비비를 가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상에서 내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이 때문이었다.


소송을 하게 되면 가장 피해를 볼 사람은 누구일까. 여기서 흥분하고 전남편을 비난하고 탓해서 금액을 조금 올려 받는 다면 아이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약속은 유효해질까. 결국 아이를 더 생각하는 쪽은 나였기에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악에 받쳐 싸우고 소송을 해 관계를 더 망치면 아이 앞에서 아빠를 비난하게 될까 봐 내가 너무 무서웠다. 면접교섭을 할 때 온전히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주지 못할 것 같았다. 이 장면들을 사진으로 찍어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나는 결국 또 포기했고 결국 전남편만 만족스럽게 끝난 이 협상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한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생각해보니 그때 참고, 견디고 버텨낸 시간들이 의미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집에는 아이가 지난날 그렸던 엄마와 아빠 그림이 걸려있고 아빠에게 줄 선물을 만드는 아이를 평온하게 바라볼 수도 있다. 그때 이혼소송을 했다면, 그때 참지 못하고 악을 써 관계를 아예 망쳐버렸다면 지금 이런 순간은 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갚아야 할 빚이 많지만 그래도 아직 일할 수 있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희망찬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내일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긴 것에 만족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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