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하자 상담위원과의 면담을 잡아주었다. 이제 와서 무슨 면담이 필요할까 싶었고 또 조퇴를 해야 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핑계로 해야 하나 고민했다. 집으로 돌아와 다이어리에 날짜를 적어놓고 상담 전 작성해야 할 내용에 대해 작성했다. 이혼사유는 폭언, 성격차이, 고부갈등, 외도, 경제적 사유 모두에 체크했다. 각각 문제가 터진 시기는 다르지만 결국 모두에 해당됐다. 이혼할 때 사유는 그 하나의 사유만 있을 수 없다. 그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까지 곪아 터지는 문제와 새로 생기는 문제를 덮고 또 덮어가며 어떻게든 버티기 때문이겠지.
상담 날 아침에는 한번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는지, 결혼을 확신했듯 이혼을 확신하는지. 전남편이 결혼을 확신했기에 나는 그 확신을 믿고 결혼했는데 이제는 이혼을 확신하니 그 확신도 믿을게 못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 답답한 돌덩이가 용암이 되어 터질 것만 같았다. 이 응어리는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건지 마음을 아무리 다잡아 보려 해도 서걱거리는 돌가루가 마음에서 머리로 또 손끝으로 사방팔방 퍼져 이제는 내 온몸에 피를 다 빼버리고 다시 새로 수혈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운전하는 내내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일찍 출발했더니 20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이런 순간에도 나는 항상 먼저 도착해 기다리는 쪽이라니 전남편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그냥 상담실 앞에서 기다렸다. 결국 5분이나 늦게 도착한 남편과 함께 상담실에 들어갔다. 상담 전 리스트도 작성해오지 않아 상담 전에 부랴부랴 작성하는 모습을 보자니 고개가 저절로 가로저어졌다.
상담은 꽤나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이혼사유를 보고 "이혼 사유가 꽤 많네요, 외도나 그런 문제는 어느 쪽에 있었나요?" 전남편이 자신을 가리켰다. "남편은 아내에게 사과를 한 적이 있나요?" 그러고 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지 못했다. 내가 상담을 오는 길에 왜 답답함을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한 내가 이혼을 요구받는 쪽이 되다니.. 상담사는 이후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면접교섭, 양육비 등을 물어보고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계속해서 질문을 하며 어떤 관계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 찾아보려 노력하였으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 말을 하면서 내 마음 안에 있는 응어리를 풀었던 것 같다. 말을 하면서 그 제3자만이라도 나를 이해해주기를 기대했고 남편이 잘못했다는 것을 확정 지어주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이제는 말을 하는 것 자체도 에너지가 써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 싸움처럼 제3의 누군가가 시시비비를 가려주고 판결까지 땅땅 내려주면 그 순간에는 억울함이 조금은 풀리겠지만 지금은 이제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냥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었지만 지금의 사유는 성격차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상담실을 나와 아무런 인사도 없이 서로 각자의 길로 유유히 가버리는 서로를 느끼며 왜 우리는 항상 이런 건지 씁쓸했다. 서로 고생했다며 행복을 빌어주는 마무리를 원했던 나는 또 전남편을 원망했고 한탄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원망하고 한탄이라는 것을 하는 내 모습을 또 후회했다.
이제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확인받고 구청장에게 서류를 제출하면 협의이혼 절차는 마무리된다. 하나하나 절차를 마무리해가면서 내가 일구어놓은 삶의 퍼즐 조각이 하나하나씩 없어지는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절차를 무사히 마무리해야겠다. 어쩐지 오늘 밤은 유난히 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