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과정에서 협의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은 정말 산더미 같았다. 이 산더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합심해서 넘어가면 좋으련만 이혼은 목표는 같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너무 고되다. 다행스러웠던 건 전남편은 아이 양육만큼은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겠다고 한 점이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 선심마저도 아이를 포기한다는 의미처럼 느껴져서 내가 아이가 된 듯 전남편에게 무척이나 서운했다.
나 역시 보통의 엄마로서 처음에는 아이 양육은 엄마인 내가 한다는 게 당연했다. 당연함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면서도 아이가 자는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문득 아이 양육자가 엄마이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찾아 헤맬 때도 있었다. 내가 아이를 키워야만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아이와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본능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이기적인지 아이가 내가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가 아이와 떨어지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아이가 느끼는 아빠의 부재를 시시각각 같이 느끼며 공감해줘야 한다는 게 자신 없었다. 과연 내가 아이의 슬픔을 볼 수 있을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 아이가 아빠, 엄마, 아이가 손잡고 걸어가는 가족만 쳐다봐도 마음이 아픈데 이걸 과연 내가 살면서 매번 직면할 수 있을까 속을 태웠다.
이렇게 마음속에 파동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왔다 갔다 거리면서도 끝내는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을 택했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아이를 보며 안도하고 있다. 이렇게 안도하고 감사하며 지내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건만 가끔씩은 정체모를 두려움이 나를 에워싸기도 한다. 이 두려움은 시간 사이사이에 아주 작음 틈을 타고 들어와 어느샌가 나의 머릿속 위에 앉아 있다. 지금 현재 아이와 먹고, 자고, 사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이가 이 일로 인해 사춘기에 방황을 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혹 아이에게 큰 일이라도 생기면 나 혼자 어떻게 아이와 나를 지켜야 할지 가정에 가정을 더하며 수만 가지의 대처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 묵직한 고민들이 먼저 떠오른다.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나를 붙잡고 늘어진다. 이럴 때면 주변에서 아이를 두고 이혼해서 이제라도 홀가분하게 살라고 했던 말들이 둥둥 떠다니며 나를 더 괴롭힌다. 왜 지금 행복한 이 상태로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건지 나에게 불쾌한 마음이 치솟는다.
결정 이후에도 계속해서 일렁이는 이 파동들이 지나가는 과정이었으면 좋겠다. 우울할 새 없이 애교를 피우는 딸을 보며 아이가 주는 행복감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들만 존재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과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서 빨리 이런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 아이와 나 둘만으로도 온전한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나 스스로 인식하는 날이 곧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