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이 아빠를 만나고 오는 공식적인 첫 1박 2일 면접교섭 날이다. 어젯밤부터 어떤 걸 챙겨야 하나 고민했다. 여행 가는 것처럼 속옷이니 세면도구니 하는 것들을 잔뜩 챙겼다가 결국 다 정리하고 그냥 실내복만 하나 챙겼다. 이혼 전에도 항상 이렇게 다 챙기고 신경 쓰고 했는데 이혼 후까지 이러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짐을 챙겼다 풀었다 하는 사이에 아이는 친할머니의 목도리를 만들고 아빠의 선물을 만들며 기대감에 가득 차 있다. "엄마, 이 목도리 할머니 목에 맞을까? 엄마 목에 한번 감아보자." 자신이 만든 목도리를 벌써 세 번째 내 목에 채워보며 점검 중이다. 그렇게 좋을까?
이 집에서 아이가 없이 혼자 있어본 적은 없기에 사실 착찹한쪽은 나다. 전남편과 셋이 살던 집에서 나와 아이가 떠나기 전날 밤 남편이 왜 그렇게 할 말을 삼키며 한숨을 쉬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실제로 겪을 허전함이 이 정도일지는 모르겠으나 상상 속에서 아이가 없이 혼자 저녁을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 나를 생각하면 한없이 애처로웠다. 아이가 엄마손 길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아이의 손길이 필요했나 보다. 이런 끈끈한 유대관계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렇게 아이에게 의지해도 되는 것 인지 또 다른 고민이 이어진다. 고민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건지 하나를 꺼내보려다 줄줄이 딸려오는 고민들을 매번 다 마주해야 끝이 난다.
혼자 지내는 낮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는데 밤이 문제였다. 아이가 없다고 이렇게 적적할 일인가. 괜히 사진첩에서 아이 사진을 뒤적거리며 지난 시간을 되짚어 본다. 그러다 간혹 아이 아빠의 사진이 나오면 서둘러 삭제 버튼을 누르고서는 다시 휴지통을 뒤적거리며 다시 사진을 본다. 왜 한 번에 다 지워버리지 못하는 건지 이 마음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긴긴밤을 빨갛게 벌어진 상처에 소금을 치듯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며 보낸다. 이런 밤을 보내고 나면 모아지는 생각은 결국 하나이다. 나는 왜, 우리는 왜 이렇게 됐을까? 분명 행복을 바라고 시작한 결혼생활이었는데... 또 우리 아이는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까?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이렇게 되기를 원하며 행동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커다란 결단을 한 나에게 용기의 박수를 보내면서도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간 과거의 나를 미워하며 자책한다.
몇 번의 면접교섭을 끝내야 이 상황은 익숙해지는 건지 자책과 원망과 후회를 멈출 수 있을지 딱 정해두고 그만큼만 감정을 소비하면 좋으련만 아마 쉽사리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빠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행복해하는 아이를 본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는 것이 아이에게 큰 기쁨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아이가 아빠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까지 나의 가벼워짐은 좀 뒤로 미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