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참 쓰다 써.
아이가 자기의 생일 소원은 엄마, 아빠와 같이 밥을 먹고 놀기라고 말했다. 아이는 6월부터 하루하루 손가락으로 생일 날짜만을 헤아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나는 그 손가락의 개수가 줄어들 때마다 돌덩이를 가슴에 하나하나 올려놓으며 그날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전남편과 식사라니... 아무리 아이를 위한 일이라 마음을 다독여봐도 피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었다.
결국 아이의 생일날은 다가왔고 저녁 6시, 식사 장소로 갔다. 예전에 우리가 가족이었을 때 자주 오던 식당이었다. 전남편이 먼저 와있었고 전남편 옆에 아이 식기가, 앞에는 성인 식기가 세팅되어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이 앞에 앉으며 세팅되어 있는 식기를 옆으로 쭉 끌어당겼다. 어색하지 않게 버벅되지 않고 착석했다며 혼자 안도했다. 상대가 있는데 의식하지 않고 먹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전남편과 나 모두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둘 다 아이가 음식을 집고 먹고 씹고 하는 과정을 뚫어지게 지켜봤다. 아이가 중간에 화장실 갔을 때는 타이밍을 놓치고 따라가지 못했다. 전남편과 대각선으로 앉아 음식을 먹다가 잘 지냈냐고 안부라도 물어볼까 싶었지만 그만뒀다. 굳이 또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상대가 나의 노력에 응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전남편에게 가 닿지 못하고 허무하게 떨어져 버리는 내 노력을 보며 받을 상처가 두려웠다.
그리고 남편이 꺼낸 첫 말은 계산은 어떻게 할 거야?. 사는 동안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꽁꽁 숨겨두고 저렇게 떠보는 게 너무나 싫었는데 또 저런다. 나도 결정하기가 싫어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라는 대답. 더 이상 말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그냥 반반씩 내자고 했다. 그냥 차라리 양육비 준걸로 계산해라든지 나에게 계산하라든지 아니면 계산을 하지 않고 아이랑 자연스럽게 나가 버렸다면 나았을 텐데 말이다. 아이 앞에서 화기애애한 연기라도 해볼 참이었던 나의 계획은 팡 터져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또 실망할 것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밥을 다 먹고 아이는 노래방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래. 아이의 생일이니까. 가자. 마음속으로 다짐을 또 했다. 부모와 어른이 되는 건 하기 싫은 것을 묵묵하게 해내야 가능한 것일까. 도대체 이 다짐을 몇 번쯤 더해야 오늘 하루가 끝날까. 아이는 점수를 확인하며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지쳤는지 아빠에게 노래를 하나 불러달라고 했다. 같이 사는 동안에도 별로 듣지 못한 노래였는데 헤어지고 나서야 듣게 된다. 전남편이 선곡한 곡은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아무 생각 없음이 느껴지는 선곡에 실소가 나왔다. 왜 하필 저런 곡이 떠올랐을까. 전남편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목 상태가 많이 안 좋구나 생각을 했다가 김동률의 어떤 노래를 프러포즈할 때 들었던 것 같은데 그 곡이 뭐였는지 노래 제목을 머릿속에서 찾다 보니 곡이 끝났다. 답가로 '서인영의 헤어지자'를 불러주고 싶었지만 너무 내 속이 보이는 것 같아 참았다.
노래방을 갔다오고도 아쉬웠던 아이는 카페까지 들리자고 했다. 조각 케이크지만 엄마, 아빠와 생일날 케이크라도 먹은 게 안도가 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 아이의 생일을 아빠와 헤어짐으로 마무리하게 했다는 죄책감에 한참을 울었다. 아이도 조용히 울었다. 그렇게 각자 위로도 못하고 달래지도 못하고 자기의 슬픔에 잠겼다. 내년 아이 생일까지는 생각도 못하겠다. 당장 오늘을, 내일을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
집에 도착하자 두 개의 문자가 왔다. 정산 문자와 뒤이어 오는 아이가 엄마가 안 좋은 표정을 짓고 있어 슬프다고 했다고 연기라도 하라는 문자였다. 아 정말 인생이 너무나도 써서 머리가 울린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런 말을 한 아이에게도 서운했다. 나름 내가할수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는데 결국 아이조차도 행복하지 못했던 이 만남은 도대체 무엇을 남겼단 말인가. 이미 헤어진 부부가 아이를 위해 가족으로 만난다는 건 이토록 어려운 일이 었는데 내가 너무 가볍게 여겼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