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소식이 있는 주말, 아이는 아이 아빠와 1박 2일 동안 시간을 보내러 갔다. 아빠와의 시간에 무엇을 할지 나에게 조잘조잘 떠들다 아빠가 왔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발을 동동거리는 아이의 발을 물끄러미 보다가 현관문에 서있는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를 외치며 뛰어가는 뒷모습을 쳐다봤다. 전남편과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만큼의 감정상태는 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에게만 잘가라고 짧게 이야기한 뒤 뒤돌아 올라왔다.
아이가 아빠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을 거란 생각을 하니 다행스럽다가도 저렇게나 좋을까 싶었다. 그리고 어젯밤의 대화가 생각나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아이가 설치해달라는 게임이 설치되지 않아 아이는 기다리다가 짜증이 나고 나는 왜 안되는지 파악 중인 상황이었다. 계속되지 않자 나도 짜증이 치밀었고 아이에게 도대체 이 게임을 왜 설치해야 하냐면서 쏘아붙였다. 아이 역시 그럼 설치하지 말라며 토라져버렸다.
한참 뒤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이 말을 하면 속상해할지 모르겠지만 아빠는 나한테 화낸 적이 한 번도 없어."라고 말이다. 당연히 그렇겠지 너를 양육하고 교육하고 보살피는 건 다 내가 했으니 잔소리할 일이 없었겠지. 갑자기 억울함과 함께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아이에게 전가되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내버리는 말을 해버렸다. "그럼 아빠한테 가서 아빠랑 살아. " 왜 하필 이런 말을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에 했을까. 아이는 아마 "엄마 나에게 친절하게 말해주세요"를 말하고 싶었을 텐데 아이의 말의 의도를 알면서도 아이가 아픈 곳을 콕 찍어 말했다고 나도 저렇게 못난 말을 하다니 아이랑 똑같은 수준밖에 되지 않는 내가 너무나 한심했다. 곧바로 사과를 한 뒤 이어 변명을 줄줄줄 늘어놓았지만 저 말은 아이에게 한동안 기억될 것이다. 정말 다시는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한 밤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게 아마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가기 전날 밤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고 말이다. 아이 아빠와 며칠 전 양육비 문제로 대화를 하던 중 시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시어머니의 뜻에만 따르던 모습을 재차 보게 되었다. 아이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차오를 대로 차오른 상황에서 아이가 아빠를 만나러 가는 것을 너무나 기대하자 질투라고 해야 할지 적대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정이 내 마음을 지배했다. 아이에게서 아빠를 빼앗지 않으려고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이혼했으면서 막상 아이가 아빠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아빠와 행복한 시간들에 대해 고대하면 또 그것마저도 싫은 내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썩 개운하지 않은 기분으로 아이를 보낸 후 내리 잠을 잤다. 시간에 맞춰 끼니를 챙겨야 할 의무가 없어지자 잠이 깨면 다시 눈을 질끈 감고 또 잠이 깨면 눈을 질끈 감고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토요일 내내 잠을 자고 일어나 커튼을 젖히니 해가 지기 전이였다. 늘어지도록 자고 나니 뭔가 충전이 되는 기분이었다. 혼자는 혼자여서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이제 정말 봄이 오려는지 손등을 스치는 바람이 따뜻했다. 지난겨울 내내 "이혼"이라는 두 글자 안에 담긴 수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썼는데 이렇게 딱 봄이 오자마자 모든 게 자리를 잡아간다. 또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면접교섭의 시간이 익숙해진 것처럼 이제 헤어져서 사는 삶이 익숙해지고 있다. 앞으로 아이와 살아가기 위해서 나를 좀 더 가다듬어야겠다는 결심도 해본다. 그러면 봄꽃과 함께 따뜻한 웃음도 더 많이 피어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