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나중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
주말에 친구가 만나자고 했다. 쉬고 싶기는 했지만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언제나 고마운 일이라 선뜻 나갔다.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친구와 일 얘기, 사는 얘기, 취미 얘기 등 통하는 이야기가 많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친구도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푹 빠져서 언제고 꺼내면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몰두했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시시해져 버렸을 때의 허탈감, 매일매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게 맞나?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는 고됨, 무엇이 될 거라는 희망보다는 이제 되었어야 할 것 같은데 되어있지 않았다는 자괴감.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서로 푸념, 위로, 공감, 반성, 다짐을 반복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끊겼다.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어떠한 해결도 할 수 없었고 사실 스스로도 해결책을 찾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공감만으로는 한계가 보이게 되었고 결론도 없는 이야기 속에서 잠시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온 것이다.
주문해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시선을 먼 곳으로 돌린다. 잠깐 나만의 상념에 사로잡힌다.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른데 지금 느끼는 바가 비슷하다는 건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도 이러한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행복이란 것은 어떤 것을 성취하거나 가지거나 이루었을 때 올 것 같았다. 하지만 성취했다고 해서, 가졌다고 해서, 이뤘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았다.
친구는 오랜 취업준비 끝에 취업을 하면 분명 행복해질 거라 확신했고 나는 헤어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는 결혼을 하면 분명 행복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취업에 성공한 친구는 직장인으로서 고초를 겪고 있고 나는 다시 헤어짐을 맞이했다. 나는 먼 미래에 30평대의 아파트, 탄탄한 직장, 해맑은 아이, 착실한 부모, 화목한 가정을 이룩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행복을 찾아 발버둥 치며 지금 행복을 만끽하기보다는 미래에 조건이 갖춰진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의 행복을 나중으로 미뤘다. 결국 손안에 꽉 쥐려던 행복은 과거와 현재, 미래 사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행복이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 나는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미래에 내가 어떠한 조건에 도달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대신 지금 행복하기로 한 것이다. 주변의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매 순간 깨어있도록 하며 지금 느끼는 것들에 감사하려 한다. 30대 중반의 허탈감과 고됨, 자괴감은 이렇게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오늘은 아침에 차 한잔, 오후의 수다, 저녁 잠자리를 보며 행복하다고 느꼈다.
내 조건, 상태보다는 이미 나에게 주어져 옆에 있는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이렇게 현실을 둘러보며 이 자리에 깊게 뿌리를 내린다. 또 어느 날 나의 모습에 불만족하여 열심히 나아갈 동력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금 내린 뿌리가 그 동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다 또 뿌리를 내릴 시간이 찾아오면 그 시간 나름대로를 즐기려 한다. 행복의 의미를 거창하고 대단하고 완벽하게 세우기보다는 자그마하지만 사소한 행복을 곳곳에 숨겨놓고 매일매일 꺼내봐야겠다. 자극적인 행복보다는 편안하고 잔잔한 행복을 추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