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의 이유

이혼을 해야만했던,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by 단시간

이혼의 이유라고 하면 외도나 도박, 폭력 등 무언가 결정적인 사유가 하늘에서 쾅! 하고 떨어져 헤어지게 되는 것 같지만 이혼은 결혼 생활하는 내내 서서히 다가왔으며 지나고 보니 결혼생활이 마치 이혼을 위해 나아가는 과정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는 내내 '아이가 20살쯤 되면 우리가 헤어지겠구나.. 서로의 필요가 없을 때 자연스럽게 멀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은 남편의 경제력과 내가 부재할 때 양육자로서의 역할이 내게는 필요하고 남편은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당장은 이혼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이렇게 이혼 선포를 할 줄이야.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제 자유를 찾고 싶다고 한다. 더 이상 이렇게 무시받고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싶다고 한다. 그래. 넌 너의 자유를 찾고 싶구나 나도 자유롭게 살고 싶지 않은 건 아닌데 정말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인데 아이를 위해 이렇게 포기하고 꾹꾹 누르고 있는데... 결혼도 네가 하자고 하니까 하는 거고 이혼도 네가 하자고 하니까 하는 거구나...


생각해보면 결혼의 시작부터 삐그덕거렸다. 만난 지 1개월 만에 결혼 결정을 하고 4개월 만에 상견례를 하고 6개월 만에 식장에 들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직장 지역도 달라 주말부부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남들이 다 말리는 건 이유가 있는 건데 그때는 뭐 때문에 그렇게 질질 끌려서 결혼을 했는지 25살의 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결혼하자고 한건 남편이었는데 준비는 오로지 내 몫이 되어 있었다. 식장도 신혼여행도 혼수도 모조리 나혼자 알아봤고 남편은 방관했다. 식장에 들어가기 전 폭언과 우리 부모님을 비하하는 시어머니, 아무런 역할을 하지도 못하는 남편... 모두 다 알고 있었는데 그때는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몰랐다. 평소 성실한 성격대로 그냥 주어진 것이니 오직 앞으로 나아가며 성실하게 결혼 준비를 척척 해나갔다. 결혼 이후로도 시어머니는 내가 직장에 있을 때나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있을 때나 친정부모님과 있을 때나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댔고 전화를 요구했다. 그때도 지금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우리 아버지 전화번호 조차도 모르고 있는데 왜 나는 계속 이런 걸 요구받아야 하는가... 내 나름대로 전화를 2번 할걸 1번 해보며 소심한 반항을 해보기도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시어머니의 전화는 나를 괴롭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나는 결혼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보려 노력했다. 아이를 임신했고 임신하는 와중에 남편이 게임 현질로 한 달에 100만 원 가까이 쓰고 안마방에 출입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 결혼은 성공으로 끝나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남편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했고 같이 살게 되었다.


여기서 반성해본다. 잘못된 선택은 그 순간 손해를 보더라도 얼른 발을 빼야 하는데 20대 중반의 나는 그걸 몰랐다. 당장에 손해를 보기 싫으니 우선 진행해보며 참아보며 견뎌보는 것이다. 옳지 못한 선택들의 총집합이 결혼이 었음을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되었다.


이후에도 시어머니는 우리 부모님을 욕했으며 남편은 적극적이지 않았고 육아에도 아이 교육에도 살림에도 관심이 없었고 티브이를 보고 핸드폰을 보고 방에 틀어박혀 안 나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인 것처럼 행동했다. 남편도 시어머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우리 부모님을 무시하고 나에게 순종과 복종을 강요했다. 양가 부모님도 서로 감정이 안 좋아져 각자의 부모님만 만나고 서로의 부모님은 만나지 않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 되니 이혼을 하려고 짐을 싸는 시도도 해보기도 했었고 참 많이 싸웠다. 이쯤 되니 남편은 왜 이 문제들을 회피만 하는 건지 도대체 아이를 잘 키울 생각은 있는 건지 나 역시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내가 입을 닫게 되었다. 남편은 이 집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고 그게 사실 편했다. 꼭 필요한 대화만 카톡으로 했고 일상의 공유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도 문제인 것은 알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니 헤어지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데 아이도 이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이혼은 이렇게 나도 모르게 가득 차는 연기같이 서서히 내 주변을 에워싸다가 잠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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