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날 목을 짓누르는 피곤함을 겨우겨우 털어내며 일어났다. 아직 무언가를 시작하기도 전인데 목을 양쪽으로 젖히자 벌써 삐걱거리는 게 느껴졌다. 개학은 아이들보다 선생님들에게 더 괴로운 일이다. 나도 차라리 아이들처럼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어버리고라도 싶은데 현실은 우는 아이들을 달래주고 보듬어주고 안아주느라 정신이 없다. 그래도 2학기 개학이라 우는 아이는 없을 거라 믿으며 출근 준비를 했다.
발에 쇠사슬을 단 듯 질질 끌며 겨우 유치원 현관에 도착했다. 그래도 밝게 웃으며 들어가자고 긴 한숨과 함께 다짐하며 겨우 쇠사슬을 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간다. 동료 교사, 원감 선생님과 인사를 한 후 교실을 둘러봤다. 환기를 시키고 음악을 틀고 그날 수업할 자료를 정리하고 아이들을 맞이하러 갔다.
아이들을 만나자마자 쏟아지는 아이들의 편지와 각종 선물. 그 사랑이 겨우 내디딘 내 발걸음에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각종 선물은 아이들이 접은 종이접기, 그림이다. 어떤 아이는 사탕과 젤리 그리고 반짝이는 보석반지, 만화 캐릭터 카드를 주었다. 이 정도면 최상의 사랑의 표현이다. 아니 최최최최최상의 사랑 표현.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할 캐릭터 카드와 보석반지를 보고 뭉클했다. 아침부터 나에게 줄 거라며 챙겨 왔을 모습을 생각하니 유치원에 오기 싫어 뭉그적거렸던 내가 떠올랐다.
편지 외에는 모두 아이들에게 돌려보냈다. "아니에요. 선생님 선물이라 가져온 거예요!"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가방에 고이 넣어주며 말했다 '선생님은 정말로 너희에게 소중한 것을 나에게 주려 했다는 그 마음 자체, 한글을 막 깨친 너희가 색종이에 모음이나 자음이 하나씩 빠진 채로 써주는 편지 자체로 너무나 행복하단다.'라고 말이다. 아이들에게 암호같이 느껴질 이 마음을 언제쯤이면 전달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들어오는 편지와 보고 싶었다는 표현에 기운을 조금씩 차렸다. 개학 전 교사에 대한 직업적 회의가 나를 공격했다. 그 공격에 패배해버려 끝내 항복한 내 마음이 부끄럽게 느껴졌었다. 아직도 한편에는 '이게 맞나?, 이게 진정 내가 원하던 직업인의 삶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선물을 바라보며 읊조린다. 선생님은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그래도 너희들이 좋다고 2학기도 지지고 볶고 추억을 쌓아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