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눈물의 여왕
인생엔 각자 안고 가야 하는 돌멩이들이 있는 거죠.
세상 편해 보이는 사람 주머니에도 자기만의 무거운 돌멩이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누구 부러워할 것도 없고요.
또 너무 자책할 것도 없어요.
- 드라마 눈물의 여왕 13회 영송의 대사 중
드라마 눈물의 여왕 13회, 영송의 대사이다.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영송. 이런 영송을 좋아하는 여주인공 해인의 고모 범자. 범자는 어머니와 함께인 영송을 부러워하며 아버지에게 모진 말을 내뱉고 나온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 그런 범자에게 영송이 하는 말이다. 알고 보니 영송의 어머니는 어릴 적 바람나고 폭력적인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갔고, 뒤늦게 치매에 걸려 영송 곁으로 온 것.
누구나 싱그럽던 20대가 지나고, 치열한 30대가 지나가고, 30대 후반쯤에 들어서면 위의 대사가 무슨 뜻인지, 어떤 말을 의미하는지 그제야 조금씩 알 수 있지 않을까.
'김미경의 마흔 수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본격적으로 몰아치는 시기는 40대부터라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망하고, 아이들이 제대로 사고를 치고, 부부 사이가 틀어지고 부모님이 아프기 시작한다고. 그러니 그전에 인생을 논하는 건 아직 너무 이르다고.
나는 이 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이미 많은 것을 겪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루었어야 했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내가 좌절되었다. 하지만 그 후 '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비롯한 많은 책을 통해 아직 무엇을 이루기에는 이른 나이라는 것을, 반대로 이제라도 무엇을 이루기에는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 희로애락들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겪은 일들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동시에 나 외에 내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희로애락이 있을까. 그들에게는 어떤 돌멩이가 있을까. 이 사람들은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어떤 전투를 치르고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친절하게 된다. 내가 힘든 만큼 그들도 힘들 것이기에. 내가 버티고 있는 만큼 그들도 버티고 있는 것일 것이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중에서.
사람들은 내가 겪고 있는 내 일들이 가장 힘들다. 나 또한 지금 내 일 외에 다른 어떤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도, 위로를 건넬 수도 없다. 어떤 일들이 가장 힘들고,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비교할 수는 없는 것. 그러니 각자의 돌멩이를 쥐고 각자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단지 위로가 되는 건 너도 그 돌멩이가 있고, 나도 그 돌멩이가 있고, 어느 하나 그 돌멩이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 각자 몫의 돌멩이를 손에 쥐고 언젠가 그 돌멩이가 부숴 없어지는 날까지 서로 위로해 나가며 가끔은 서로 도움을 주며, 살아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다 보면 인생의 희로애락도 다 지나가고 편안함에 이르는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 지금의 시간을 추억하며 잘 버텨내었다,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쯤엔 내 주머니 속 처음의 울퉁불퉁했던 돌멩이도 둥글둥글 어여쁜 돌멩이로 변해있을 수도. 그때가 올 때까지 잘 버텨내어 살아보자. 우리 모두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