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여우별 분식집
어떻게 정확히 알 수 있을까. 작품 속 주인공도 사람인데.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교만이다. 그 자신감이 편견을 만든다.
p118
2023년 11월에 출간된 한국 소설 '여우별 분식집'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이다. 소설가이지만 아직 그럴듯한 작품하나 쓰지 못한 채 분식집 바지 사장으로 일하는 주인공. 하지만 꿈을 버리지 못한 채 분식집 일이 끝난 매일 밤 소설을 쓰지만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소설. 그런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나는 첫인상이 안 좋았던 친구들과 시간이 지나면서 절친이 되었다. 중학교 시절 우연히 학원에서 만나 다음 해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된 친구도, 대학교 시절 몇 년 동안 인사만 겨우 하면서 지나갔던 같은 과에 학번은 다른 언니와 친구도, 지금은 그 누구보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다 나의 그릇된 편견이 만들어낸 시작이 아니었을까.
어릴 적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나는 지금보다 더 소심하고 평범했던 나이기에 유난히 활발한 친구, 혹은 유난히 이쁘거나 인기가 많은 친구는 뭔가 나와 맞지 않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 편견은 대학교 때까지 지속되었나 보다. 하지만 어떤 인연으로 그 친구들과 나는 엮이게 되었고, 그녀들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내가 그녀들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반대로 나에 대한 그녀들의 편견 없는 생각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들은 나에게 거침없이 다가와 주었고, 망설이는 나에게 먼저 손 내밀어주었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뒤늦게 그녀들의 마음이 정말 고마워 그녀들의 고마운 두 손을 놓지 않기 위해 20년이 지난 혹은 그 이상이 지난 지금은 내가 먼저 손 내민다.
이런 경험들 덕분에 이제는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면 그 어떤 편견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아니 나랑 맞는 사람일지, 아닐지 판단조차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기에, 설사할 수 있다 한들 아직도 나는 노력은 하지만 완전히 편견에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기에.
편견이라는 건 때로는 깊은 인연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놓치게 될 수도, 때로는 내가 평생을 바칠 일이 될 수도 있는 일들을 놓치게 만들기도 한다. 편견은 비단 사람에게만 씌워지는 건 아닐 테니까.
예전에 나는 내가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동시에 그 직장이 만들어낸 내 명함을 잃게 되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나의 이름 석 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을 테니까. '무슨 일을 하세요?' 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직장이 주는 명함이 내 명함이 아니라 내 이름 석 자가 진짜 내 명함이라는 것을. 이제는 내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는 세상이라는 것은. 그래서 나는 오늘도 브런치의 아이템을 찾지 못해 어제저녁부터 오늘아침까지 머리를 싸매다가 지금에서야 겨우 몇 자 적는다.
한때는 나의 일이 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내가 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그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