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너는 봄날의 햇살 같아. 로스쿨 다닐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5회 영우의 대사 중.
2022년 6월에 방영된, 그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그 어떤 대사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대사이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 변호사 우영우. 그런 영우가 로스쿨 동기이자 같은 로펌에 근무하는 친구 수연에게 회사 구내식당에서 무심한 듯 던지는 이 말은 그동안 영우가 수연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당사자인 수연도 몰랐던 영우의 마음을 위의 대사로 표현함으로써 이 드라마를 보고 있던 많은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이 대사에 마음을 빼앗긴 건 이 드라마 내내 영우 못지않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수연의 캐릭터 때문이었다. 수연에게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그리고 영우에게 이런 수연의 존재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수연은 영우와 같은 서울대 로스쿨 졸업생에 좋은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알고 있다. 자신이 영우의 천재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물론 본인도 영우 못지않은 수재이긴 하지만, 영우는 천재니까. 하지만 수연은 그런 자신과 그런 영우를 인정한다. 가끔 영우를 질투하는 모습도 나오긴 하지만 정말 잠깐일 뿐, 앞에 대사에 나온 대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영우를 수연 자신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영우를 위한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의 장애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는 영우를 다시금 일으키는 것도 수연이다. 장애인 차별은 법적으로 금지라는 말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일부러 다 듣게 크게 외치면서. 물론 수연이 이럴 수 있는 건 그녀가 모든 걸 가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좋은 집안, 좋은 학벌, 좋은 머리, 좋은 직장. 이 모든 걸 다 가졌기에 다른 이들보다 더 당당히 행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걸 다 가졌다고 모든 이들이 수연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다수의 행동에서 소수의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내가 수연의 입장이라면, 아직은 단체가 더 중요하고, 친구들이 더 중요한,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대학생 시절에 수연처럼 다 가졌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꺼리는 영우를 대놓고 챙기면서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오히려 현실이라면 모든 것을 놓고 따지자면 수연이 영우보다 나은 입장일 수가 있을 텐데? 이것은 직장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직 어느 그룹에 속하는 것이 중요한, 소속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한국인인이다. 그래서 난 이 드라마를 보며 자페스펙트럼이라는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꿋꿋이 자기의 길을 가는 영우도 대단했지만, 그런 영우의 옆에서 평범한듯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는 수연 같은 이들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 외 선배 변호사 정명석 변호사도. (다음번에는 기회가 된다면 정명석 변호사를 소개해 봐야겠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누군가에게 '봄날의 햇살'이라는 찬사를 받을 행동을 단 한 번이라도 해 본 적이 있는지. 아니라면 아니 아니겠지만,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이런 말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받아보는 인생을 살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내가 가진 돈도 중요하고, 나의 가족도 중요하고, 내가 가진 행복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어떤 기쁨과 행복을 주느냐가 아닐지. 내가 가진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고, 내가 누군가에게 미치는 영향도 중요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이번 글을 쓰면서 해본다.
그래서 나의 생이 다하고, 나의 묘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새겨주는 짧은 문구에 '봄날의 햇살 최수연'처럼 아름다운 별명 아닌 별명이 새겨질 수 있도록 남은 생을 그렇게 살아보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