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세상에서
여름방학이 끝나고 드디어 시작된 2학기.
요즘은 여름방학이 2주 만에 끝나는 학교들도 많지만 우리 아들의 학교는 한 달을 여름방학으로 보냈다.
태권도 여름방학까지 겹친 날에는 너무나 심심해한 아들.
친구와 놀고 싶다고 노래를 하길래 직접 약속을 잡으라고 지나가는 투로 이야기했더니 정말로 직접 친구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날 친구와 키즈카페에서 놀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돌봄을 가 있을 시간이고, 본인도, 그 친구도 핸드폰이 없기에 내 핸드폰으로 친구 할머니께 전화를 건 것이다. 아들 친구의 부모님과 나는 꽤 친하지만 부모님이 맞벌이라 친구의 할머니와 우리 아들 그리고 나와도 유치원 때부터 절친한 사이이기에 망설임 없이 전화했나 보다.
그리고 다음날 몇 시에 키즈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고 했다. 정말 부쩍 큰 아들이다.
다음날, 키즈 카페에서 친구와 만난 아들. 하지만 둘만 놀기에 심심했는지 같은 시간에 방문한 처음 본 동생들(나중에 물어보니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생 자매들이라고 했다)과 2시간 넘게 함께 놀았다.
이맘때 아이들은 처음 보는 친구들, 동생들과도 잘 논다. 아 형들은 좀 아닌 것 같다. 형들의 경우 한 3학년까지는 잘 놀아주는데 그 이상은 안 놀아준다. 하하하.
놀 때는 성별도 상관없다. 같이 놀 수 있으면 그뿐이다. 놀다가 싸우더라도 10분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놀고 있다. 좀 심하게 싸운 날이면 토라져서 집에 오더라도 다음 날 씩 웃으면서 인사한다. 엄마인 내가 황당해서 순간 멍하니 있을 때도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아이들 사이에서 아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이런저런 상황을 집어넣는 건 어른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의 상황, 어른들의 관계.
그런 어른들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중간에서 불편해지는 게 아닐지.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점점 아이들도 어른들을 배워가는 게 아닐지.
가끔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편을 가르고, 네 편 내 편으로 노는 아이들을 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그 관계들에 끼지 못하거나 그런 친구들을 이해 못 하는, 아직은 앳된 또 다른 아이들이 있고. 벌써 이들 사이에선 이른 인간관계가 시작되고 있다. 우리 때와는 달리 너무 이른 그 관계들이.
나는 아직은 어린 우리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저럴 때가 있었을 텐데, 왜 커가면서 지금의 어른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이들처럼 아무런 계산 없이 인간관계에서만이라도 순수한 그 마음으로 쭉 어른이 될 수는 없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껏 퍼주는 그 마음,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잘하면 맘껏 응원해 주고, 응원받고, 함께 하고 싶은 그 순수한 마음이 왜 점점 커가면서 조금씩 변질되는 걸까.
사실 아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된다.
앞뒤 안 보고 친구 그 하나만을 바라보는 아들과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주변에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들을 이리 재고 저리 재보는 나를 비교하며 왜 나는 아들처럼 생각할 수 없는지, 내가 말하는 그 상황이라는 게 정말 중요한 게 맞는지, 아들처럼 그 사람 하나만을 볼 수는 없는 건지 되묻게 된다.
어른들이 어린이처럼 살아간다면, 아니 아들처럼 내가 세상을 살아간다면 조금은 더 심플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인간관계에서만은 덜 복잡해지지 않을까.
어른은 어린이를 이끌어주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때론 어린이들이 어른들이 잊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들을 상기시켜 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어린이와 어른은 같은 세상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메꾸어주며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서로 동등한 존재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가 아닐까.
나는 오늘도 아들에게 또 하나 배운다. 아들의 세상에서.
그리고 아들의 그 순수한 마음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도록, 변질되지 않도록 최대한 옆에서 도와주려 한다. 나의 세상으로 들어오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