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대가 지나간다

외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by 샤이

평일 내내 빗방울이 떨어지는 흐린 날씨가 이어지다가 맑은 날씨가 우리를 반기는 어느 주말, 아침부터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

아빠에게 온 전화였다.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외할머니의 부고일 것이라는 것을.

외할아버지가 2년 전에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외할머니는 급격히 몸이 쇠약해지시더니 요 몇 달 사이 지병이 악화하고, 몇 주 전부터는 거동이 힘들어지셨다. 그리고 며칠 전 본인 입으로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말씀 하셨고, 외삼촌들과 이모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제, 삼촌과 외숙모들이 보는 앞에서 돌아가셨다.

26살 어린 시절 나를 잠깐 키워주신 친할머니의 죽음, 34살 단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의 죽음, 37살 나에게는 뒷모습만 보여주셨지만 항상 그 자리에 영원히 계실 것 같았던 외할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지금 39살 마지막으로 외할머니의 죽음을 맞았다. 네 분의 조부모님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신 외할머니. 어린 시절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 덕에 여름방학마다 시골 외갓집에 와서 한두 달을 보내고 갔던 그 시절 추억이 아직도 나의 기억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그림책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시골 외갓집에 대한 기억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너무나 뿌듯한 추억이다.

'난 이런 기억도 있다!'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이.

어른이 되고 나서도 가끔 외갓집에 갈 때마다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시며 나에게 달려오시는 그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그 모습은 이제 영원히 추억 속으로 간직해야 할 때가 왔다.


최근 내가 읽는 책은 전쟁이 일어나는 곳에 목숨 걸고 찾아가 사진을 찍는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유난히 죽음에 대한 묘사가 많은 이 책을 읽는 지금, 직접 경험한 죽음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장례식장에 있다가 잠시 자러 들어온 외갓집에서 나보다 30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한 첫마디.

"이 방에 할머니가 계셔야 되는데..." 나보다 30년을 늦게 태어났지만 최근 9년 동안 더 많이 외할머니를 마주한 나의 사촌동생의 한마디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이제 그 외갓집은 주인이 없는 집이 돼버렸다. 누구에게나 오는 죽음이지만 뉴스 속에서 들려오는 죽음도, 단지 그 존재만을 아는 사람의 죽음도, 가장 가까운 죽음도 그 죽음을 맞이하는 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제 한 세대가 갔다. 그리도 또 한 세대가 태어난다. 외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내년에 태어나는 또 다른 사촌동생의 아이. 그렇게 세상은 흘러가나 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그리고 그 죽음과 탄생 앞에서는 언제나 숙연해진다.


더 이상 이승에서의 고통 없이 편안히 지내시기를 그 누구보다 기원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누구의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이었던, 그리고 할머니였던 당신을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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