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인생을 사세요
아직 장남이라는 단어에 붙는 무게가 있을까.
시대가 많이 변했고, 아들보다 오히려 딸을 선호하는 이 시대에.
하지만 난 이전 부모님 세대에는 아직도 장남에 대한, 아들에 대한 기대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들이 가지는 무게까지도.
우리 엄마는 5남매이다. 위로 언니 한 명, 아래로 여동생 한 명, 남동생 두 명. 즉 5남매 중에 둘째.
맏딸에게 치이고, 이쁜 셋째 딸에게 치이고, 아들들에게도 치이는 둘째.
그리고 그중에서도 맏딸보다, 누구에게도 안준다는 셋째딸보다, 귀여운 막내 아들보다도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가장 아끼신 건 맏아들, 나에게는 큰외삼촌이었다. 그분들이 가졌던 맏아들에 대한 사랑은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보다 더 깊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였으니 한 핏줄인 이모와 삼촌은 어땠을까.
외손녀, 외손자가 태어나도 시골에 위치한 외갓집의 재래식 화장실은 바뀌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끔 외갓집에 갈 때면 낮에는 그렇다 쳐도 밤에라도 화장실을 갈라치면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 앞을 지키고 있던 큰 개까지.
하지만 10년 이상 흘러 친손녀가 처음으로 태어나자, 목수셨던 외할아버지는 집안에 화장실을 만드셨다. 샤워 시설도 함께. 온수가 집 안에서 콸콸 나오고, 밤에 자다 깨도 화장실에 빠질까 봐 걱정 안 해도 되는 때가 온 것이다. 사촌 동생의 탄생과 함께.
그만큼 큰아들에 대한, 그리고 그 아들이 낳은 친손녀에 대한 사랑은 외손녀인 나 그리고 나와 한 살 터울인 외손자인 동생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더 이상 병치레를 피할 수가 없었고, 시골에 사시는 두 분을 돌봐야 할 의무는 당연 큰 사랑과 그 사랑만큼 얼마 안 되는 유산이라도 받아 간 삼촌들 몫이었다. 특히 큰삼촌에게 부여된 의무는 막내삼촌이 가지는 의무보다 더 컸다. 밤낮없이 일하랴, 어느 정도 크긴 했지만 셋이나 되는 자식을 돌봐야 할 나이에 삼촌은 주말마다 시골집을 드나들며 맏아들의 몫을 해나갔다. 바로 옆에서 보지는 못했어도 가끔 엄마를 통해 들려오는 외갓집의 소식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큰삼촌이 짊어지고 있는 그 무게가 꽤 무겁겠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누구에게는 부족할 수 있는 그 역할이 제삼자의 눈으로 보는 나에게는 무겁고 버거워면 보였다.
이제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보내드리며 드는 생각은 할머니에게는 죄송하지만,
'큰삼촌이 이제는 자기 인생을 살 수 있겠구나'라는 것. 아이들은 부모의 손을 떠났고, 가끔 부모의 손이 필요하겠지만 어린 나이의 아이들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그들의 길을 스스로 갈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보살펴 드려야 할 부모님도 안 계신다.
이제야 삼촌은 삼촌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삼촌뿐만이 아니라 이모들에게도 나의 엄마에게도 해당하는 일이긴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올라오는 길에 나는 큰삼촌의 손을 붙잡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다.
이제 막 부모를 보낸 자식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혹시나 나의 말이 상처가 될 수도 있기에.
하지만 이 글은 나를 위한 글이니 이 글에서는 말하고 싶다.
그동안 장남으로 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인생을 사세요. 그 누구의 인생이 아닌, 당신의 인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