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주제는 "가족"입니다.
내 글의 주제는 '가족'입니다.
대학교 시절 연극학과를 전공하면서.
영화과 수업 중에 시나리오 관련된 수업을 듣기도 하고.
29~30살 에는 영상 작가교육원을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글쓰기는 엄청난 집중력과 오랜 시간 투자가 필요했다.
돈을 벌기보다는 쓰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
대학등록금부터 사회생활을 하기까지.
스스로 벌어서 충당해야 했다.
재수한 1년까지 포함해 대학교를 총 8년 만에 졸업했다.
그런 내가 버텨내기가 힘들다는 걸 체감했다.
2년을 충무로 교육원 주변을 방황하다가 포기했다.
마지막 변명은 “나한테는 재능이 없다.”
근데 스스로에게 재능이 없는 걸 알면서.
마흔이 넘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건지.
이런 게 아줌마의 무모한 힘인 건지.
“그때 포기했던 도전을 다시 해보자!!”
어찌 보면 시부모님의 차별이. 남편의 무시가.
육아를 버텨내기 위한 아줌마의 몸부림이.
과거의 꿈을 소환했을지도 모른다.
20대의 꿈을 소환해.
글을 쓰겠다는 마흔의 아줌마는.
영상작가교육원의 작가님이셨던 김작가님의 시나리오연구소를 찾았다.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 아줌마는 고집스럽다.
원장님(작가님)께 늘 혼났던 부분이 “주제”였다.
“넌 어떻게 맨날 주제가 가족애냐?”
“별로예요?”
“넌 그게 재밌냐?”
그렇게 한 소리를 들었지만.
수업을 듣는 4년 내내 “가족애”에 관련된 작품만 썼다.
“저는 죽을 때까지 가족애에 관해 쓰다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아요.”
“그래라 그럼.”
원장님(작가님)의 말투가 원래 좀 툭툭거리시지만.
정이 많은 분이다.
툭툭 내뱉는 말에 상처가 돼서 중간에 포기하는 애들도 있지만.
오래 다니는 애들은 원장님의 진심을 안다.
그렇게 나를 위해 주제를 바꿔보라고 하셨는데.
고집스럽게 끝까지 가족애를 주제로 썼다.
나를 위한 충고란 거 알지만 다른 주제는 쓰고 싶지 않았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수업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작가 언니(출간작가)가
“넌 동화를 쓰면 더 잘 쓰겠다.”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때는 동화를 쓰고 싶지 않았다.
영상 시나리오가 쓰고 싶었다.
‘내 시나리오가 유치한가 보구나.’
자세한 내용을 묻지도 않고 혼자 판단했다.
그리고 혼자서 상처를 받았다.
눈치가 병인 스타일이라.
상처를 준사람은 모르는 상처들을 나 혼자만 받는다.
글쓰기를 할 때 내 태도는 문제가 많았다.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아니란 걸 알면서.
애써 상처를 떠않는다.
늘 자신감 없고 자존감마저 위태롭다.
그래서 6년째 발전 없이 그 자리인가 보다.
그때 동기언니의 '선경지명'인가?
언니의 조언대로 지금 가족동화를 쓰고 있다.
“언니, 그때의 조언 고마웠어!”
내 태도가 바뀌면서 상처가 조언으로 바뀐다.
다만, 그 시간이 오래 걸렸고.
많은 과정이 필요했다.
아직도 글쓰기에 문제가 많지만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이 엄청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라는 주제가.
유치하고 재미없을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가장 큰 힘이다.
나에게 있어 “가족”은 그렇다.
어린 시절 가족을 통해 겪은 여러 가지 아픔.
그리고 다시 이룬 내 가족을 통해 치유받는 과정.
가족이라는 것이 나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형성하는지.
내 머릿속 이야기의 주제는 온통 가족이다.
돌아가신 우리 아빠는.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준 적이 없다.
밖에서 돈을 버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모든 가족을 두려움에 떨게 하셨다.
일주일에 2~3일 집에 들어오셨지만.
그날도 늘 술에 취해계셨고.
술에 취하시면 자주 폭력을 쓰셨다.
어린 자녀들은 아빠의 폭력으로 늘 두려움에 떨었다.
딸 셋에 어렵게 얻은 막내가 아들.
엄마는 아들 못났는 며느리. 아내로.
엄청난 시집살이를 하셨고.
할머니와 아빠는.
늘 “여편네”, “기집년들”이라는 말로.
우리 집안의 여자들의 자존감을 짓밟았다.
특히 할머니는 나를 미워하셨다.
나만 미워한 게 아니었겠지만.
공부하고 싶어 했던 나에게 늘.
“기지배가 공부해서 뭐 하냐.”
“기지배가 이렇게 욕심이 많냐.”
“대학이 한두 푼인 줄 아냐. 빨리 시집이나 가!!”
할머니의 여성 비하는.
며느리인 엄마와 그 엄마가 낳은 딸들에게.
늘 상처로 박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상처가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아빠를 피해 도망을 치려고 시도했던 행동도 이제는 이해가 된다.
번번이 아빠에게 잡혀 오셨지만.
그 이후에는 폭력이 더 심해졌지만.
목숨을 걸고 시도했던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아빠가 간암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슬픔보다 멍했던 거 같다.
'슬퍼야 하는 건가?'
솔직히 무시무시한 폭력에서 해방됐다는 기쁨이 가슴속에 있었다.
가족의 죽음 앞에 슬프지 않은 게.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복잡한 심정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다섯 명이 모여 살면서.
가난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적응을 했다기보다. 적응을 해야 했다.
그렇게 심리적으로 복잡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오히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일로부터 인정이라는 것도 받고.
돈이라는 것도 벌고.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하나씩 쌓아가며.
연애도 하고(물론 이별의 슬픔도 겪고)
결혼도하면서 감사하게 살았던 거 같다.
내가 유난히 돈을 버는 걸 대단하게 생각했던 건.
아빠의 영향인 거 같다.
아빠한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당신처럼 돈 번다!! “
당신은 그걸로 유세를 떨며 가족을 괴롭혔지만.
나는 더 잘 벌고 즐겁게 잘 산다!
하지만 잘 산다는 건 착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을 버는 게 제일 잘하는 거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거 같다.
돈을 잘 번다는 착각에 빠져서.
내 속에 상처가 있는 것도 몰랐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내 가족을 만들면서.
내 과거 가족에 대한 상처들이.
다 회복되지 않음을 알았다.
내 아빠와 할머니를 너무 미워했고.
아빠와 할머니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 같다.
그 상처를 건들며 다시 끌어내 준.
남편과 시부모님을 통해서.
힘들었지만 오히려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던 거 같다.
그리고 지금은 완벽하게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글을 쓰는 시간을 통해서.
그 상처들을 하나씩 치유하고 있다.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든 것도.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찾게 해 준 것도 “가족”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가족은.
여자인 엄마가 희생하는 그런 가족이 아니다.
가장 약한 사람이 늘 참고 양보하며 감내하는 걸
‘가족의 미덕’으로 배우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착각은.
늘 가장 약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게 된다.
“희생”과 “배려”는 다르다.
희생은 수직적이고 수동적이다.
하지만 배려와 양보는 존중에서 시작된 사랑이다.
물론 때로는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희생을 ‘대단한 명예’로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그건 ‘서글픈 명예’ 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가족을 쓰고 싶지 않다.
가족이란.
서로가 존중받고, 사랑받고,
누가 더 강하고 약한지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 희생하는 가족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관계.
나는 그런 가족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번 <오징어 게임3>을 보면서 많이 불편했다.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한 것 같지만...
갓난아이를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합의 하는 어른들의 모습.
돈 때문에 내 아이까지 죽이는 부모.
가족이 중심인 외국인들의 문화에서는 어떻게 보였을까?
어쩌면 우리나라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가족이기주의’와 ‘가족을 존중하는 마음’은 다르다.
가족이기주의는 내 가족만 생각하지만.
가족을 존중하는 마음은 인간 전체를 존중한다.
아직 내 글쓰기 실력이 생각을 온전히 글로 담아내기 부족하지만.
내가 쓰고 싶은 주제는 그렇다.
감사하게도.
내 소중한 가족 덕분에.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