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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버틴 육아, 꿈으로 나아가며

내 생각을 바꾸는 시간!!

by 글쓰는 맘


“내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겠다는 주장은 너무나 마땅한 권리이기도 하다. 내 공간에 대한 권리, 내 시간에 대한 권리로부터 찾아야 내 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니 집안에 나를 힘들게 하는 억울한 원칙이 있다면 지금부터 바꾸자. 내 꿈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건강한 소망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 <김미경의 마흔 수업> p139


나의 시간을 갖고 나의 꿈을 찾는.

엄마들의 건강한 소망에는 문제가 없다!!!


마흔이 넘어 인생을 다시 계획한다.


마흔이 넘은 지금, 나는 인생을 다시 계획한다.

100세 시대를 지나 120세 시대가 다가올지도 모른다.

살아갈 시간이 길어진 만큼,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최근 2~3년 사이,

그 변화가 부쩍 빨라졌다.


6년 전, 처음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을 때보다

요즘은 더 많은 응원을 받는다.

마흔이 넘어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나의 용기에.

가장 큰 변화는 남편의 지지이다.

그리고 달라진 주변 반응에 힘이 난다.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못하니까 젊을 때 해야 한다."

"다 때가 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때에 해야지 많은 혜택이 있고.

사회라는 것이 그런 틀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쉽게 얻어지는 것들에는 "보통의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가 지났거나 그때보다 이르다고 해서.

얻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조금 힘들 뿐이다.


잠시 내가 걸어온 "보통의 때"를 생각해 본다.

그때를 놓쳐서 지금 후회하는 것들이 꽤 많다.

늦은 결혼, 늦은 임신,

늦은 육아, 늦은 꿈 찾기,

그리고 지금, 늦은 재취업.


그런데 그게 정말 문제일까?

왜 나는 때 늦은 "나이"앞에 작아질까?

그렇게 나를 의심하며 시간을 보내고.

때를 더 늦어지 게 만든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주변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그걸 하겠다고? 그 나이에? 너무 늦지 않니?”


그런 말들이 내 안의 불안에 기름을 붓는다.

그렇게 포기하고 나면 결국 더 늦어지는데 말이다.


특히 여성들은 ‘가족을 위한 희생’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암묵적인 강요 속에서 산다.

어떤 도전 앞에서도,

엄마는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그건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주입해 온 가스라이팅 같다.


나 역시 그랬다.

6년 전, 드라마 작가의 꿈을 위해 영상작가 학원을 다녔던 시간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후회가 밀려온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볼걸.

그때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이 문을 닫기도 했고

아이들을 맡길 곳도 없었다.

늘 시간에 쫓겼다.


낮 시간,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겨우 3~4시간을 쪼개 글을 쓰고,

아이들이 하원하면 다시 육아 전쟁이 시작됐다.


그때는 지금처럼 남편의 지지도 없었고,

시부모님의 잔소리는 정점이었다.


“아이들 공부가 더 중요하지. 네 공부가 뭐가 중요하니!”

이기적인 엄마가 된, 꿈을 찾는 엄마.


나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라는 이름 속에

‘나’라는 사람을 숨겨야 했다.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내 꿈을 펼치는 일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물론 마흔의 나이에 가족을 책임진

남성이라면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남자들은 스스로

“가족의 바람막이가 되어야 한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부 여성들은

그 바람막이를 기대하며 결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마흔 수업>의 김미경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착각'만 안 하면 된다. 결혼하면 덜 불안할 것이라는 착각.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의 바람막이가 되어 줄 거라는 착각." - p147


내 인생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택하면 꼭 대가를 치른다. 마흔이 넘어 경제적으로 취약해지면 많은 여자들이 남자를 집, 돈처럼 대한다. 나에게 집을 사줄 사람, 나 대신 돈을 벌어다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러다 꼭 최악의 선택을 한다. 정말 무능한 남자를 만나거나 사기당하기 십상이다.” - p150


결혼은 도피처가 아니다.

잠시 나를 뒤돌아 보는 시간을 줄 수 있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며 삶이라는 것을 보는 시야를 넓혀줄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이 나를 감추는 바람막이는 아니다.

여자로서 그런 짐을 남자들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과거에는 그런 책임을 남자에게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한 건지는 모르겠다.




보통... 어떤 나이가 되면 대학에 가고 졸업하고 어떤 나이가 되면 취직을 한다.

그리고 어떤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하고.

어떤 나이가 되면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사이에.

우리는 포기해야 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틀은 우리를 시스템에 맞추어 안정적으로 안내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삶의 많은 자유를 빼앗고 있다.

자유와 안정 중에 어떤 것이 더 중요한 것 인지.

그것이 정답은 아닌 거 같다.

다만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내 선택의 문제’이다.


“그럼 난 무엇을 선택하고 싶은 가?”

내 마음의 생각을 들어볼 시간이다.

내 나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인가?

내 나이가 꿈을 꾸면 안 되는 나이 인가?

부모인 나는 결혼 후에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나?

꿈을 꾸는 부모는 이기적인가?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다가.

문득 영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예전에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어

가볍게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서 반가운 메시지를 발견했다.

“이거다. 내가 찾던 삶의 주제!”

영화 속 대사 하나가 나의 가슴을 울렸다.


“당신이 ‘그’라고 믿는 순간, 당신은 ‘그’가 된다.”


진짜 나(그)를 찾고 싶다.

내 안의 ‘그’를 깨우고 싶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사람이 되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그 과정을 즐기는 중이다.


오십 중반이 지나 지금의 때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장하려 한다.




지금, 마흔 중반을 넘긴 내가

다시 글을 쓰고 공부를 하겠다는 도전 앞에.

이제는 가장 힘든 건 남들의 반응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속 생각을 바꾸는 일인 거 같다.

무엇보다 내 안의 쓴소리가.

나를 가장 괴롭혔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다.

마음을 다독이고, 생각을 바꾸고 있다.


“이제 겨우 마흔 중반이다. 앞으로 60년을 더 살아갈 텐데, 이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았다.”


나이가 주는 선입견, 그 벽을 넘기로 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은 도착보다 그 과정이 더 설렌다.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나’를 찾아가는 이 시간이 설렌다.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는 말은 어쩌면 너무 거창하고, 가족을 위해 나의 시간을 조금 양보했던 과거.

그 시간들을 지나.

지금 나를 찾기에 너무 '좋을 때'에 와있다.


이제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용기를 내어

‘나이’라는 선입견을 넘어

엄마이자 아내,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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