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도 괜찮아
작년 겨울 쯔음, 아이들 책을 더 구매하고 싶어 당근마켓 앱을 기웃거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책보다 더 눈을 끄는 물건들이 많았다. 어린이 책상의자세트, 이동형 행거, 멀티 오븐 등등.. 분명 책만 봐야지 생각하고 앱을 켰는데, 어느새 다른 물건들에 매료되어 하트를 누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우리 집엔 아이들 전용 책상과 의자가 없다.
대신 우리 집 식탁이 아이들의 그림 그리기, 종이 오리기, 공부까지 담당하는 멀티 테이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 전용 책상, 의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둘 위치도 마땅치 않고 매번 청소할 때 장애물이 될 것 같아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들여놓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식탁은 식사시간 외엔 비어있고, 식탁 매트에 생기는 색연필, 연필 자국은 매직블록으로 쉽게 닦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첫째 아이방을 만들면서 옷 서랍장을 비웠는데, 아이가 좀 더 크면 침대 발밑에 이동형 행거를 둘 예정이었다. 평소엔 침대와 벽 사이에 두었다가 옷을 꺼낼 땐 행거를 옆으로 빼면 되니까 아이가 이용하기에 적절할 것 같았다.
문제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데, 벌써부터 어떤 행거가 좋을지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어차피 몇 년 뒤에는 더 좋은 행거가 많이 나올 텐데 왜 괜히 벌써부터 힘을 빼는지.. 급한 성격과 여유 없는 마음이 스스로를 재촉한다.
마음을 다잡고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주문을 외워본다.
몇 달 전, 집에 있던 오래된 에어프라이기를 처분했다. 남편이 자취 시절부터 쓰던 제품이었는데, 당시 이보영 배우님이 광고모델로 에어프라이기를 막 알리던 시기였다.
평소 요리를 잘 하지 않는 남편은 그때 왜 에어프라이기를 샀을까? 지금까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 집은 돈가스며 치킨이며 에어프라이기 덕을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세척 관리가 힘든 에어프라이기를 계속 쓰기 찝찝해 고민 끝에 처분하였다.
에어프라이기를 위해 구매했던 종이 포일은 많이 남아서, 한동안 기름 튀는 생선구이를 할 때 프라이팬 위에 덮거나 접시에 키친타월 대용으로 깔곤 했다.
요즘엔 전자레인지+오븐+에어 프라이어 기능을 모두 갖춘 제품이 많이 나오는데, 언젠가 집에 있는 전자레인지가 고장 나면 구매할 계획이다.
전자레인지 또한 에어프라이기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됐지만, 매우 튼튼하고 멀쩡해서 당분간 고장 날 것 같지는 않다. 분명 튼튼한 건 좋은 건데, 이상하게 살짝 아쉽기도 하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물건을 비우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건 소비욕을 다스리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점에선 난 아직 수련이 필요하다.
옷, 자잘한 인테리어 소품 욕심은 없지만, 주방용품, 가구 욕심이 있는 나는 유튜브와 쇼핑앱을 볼 때마다 지갑 사정과 상관없이 구매 유혹에 빠진다.
멋진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특히 대폭 할인!)에 끌려 쉽사리 구매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애써 비운 공간을 '한때의 유행템'으로 채우지 않도록 절제할 필요가 있다.
내게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없어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