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제일 많이 비운 품목은 단연 옷이다.
이사오기 전, 신혼집의 작은 옷방은 계절용품과 잡동사니, 네 식구의 옷으로 가득 차 좁고 답답한 방이었다.
어느 날 그 답답함에서 벗어나고자 옷을 비웠을 때,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옷들 중 상당량은 그저 짐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사실, 비우기 이전에도 나는 옷이 별로 많은 편은 아니었다.
20대 후반까지는 쭉 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이쁜 옷을 잘 골라 사는 언니 덕을 봤고,
독립하고 나서는 내 스타일의 옷을 채워보기도 전에 갑작스레 임신부터 해서 임부복 몇 벌만 새로 구매했을 뿐이었다.
이후 임부복을 비우고 난 자리에는 한동안 내 스타일이 뭔지 연구하며 실험정신으로 구매한 옷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결국 실험 실패로 끝난 옷,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 낡고 해진 옷들을 비웠고,
지금의 난 옷 욕심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옷은 속옷, 양말을 제외하면 사계절 옷 모두 합해서 총 28벌이다.
우리 가족 옷방엔 내 사계절 옷이 서랍칸 하나, 옷장의 옷봉 두 개(하나는 부부공용)만 차지하고 있다.
서랍칸 하나엔 바지, 내의 종류가 있고, 옷봉엔 상의와 원피스, 외투가 걸려있다.
이 외에 따로 보관 중인 옷은 없다.
만약 내가 회사를 다니거나 외출이 잦은 사람이었다면, 지금보다 몇 벌 더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필요에 따라 격식 있는 자리에서 입을 수 있는 재킷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외출 동선이 대체로 짧고, 격식 차려야 하는 자리에 갈 일도 아직까지 없었기에 더 많은 옷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가끔은 그때그때 유행하는 옷에 눈길이 가기도 하지만, 지난날 내 실험정신을 발휘한 결과 난 유행보다 아주 무난하고 심플하고 질릴 걱정 없이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한때 유행은 그저 지나가는 바람처럼 보내주는 것이 최선이다.
옷을 대하는 내 기준은 옷 서랍을 열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몇 없는 바지 종류는 그마저도 같은 제품을 색깔만 다르게 구매한 것이 대부분이다.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하나 흔들리는 것은, 문득 내가 궁상을 떠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올봄 쯔음, 내가 몇 년째 즐겨 입던 맨투맨 앞쪽의 올이 나간 적이 있었다.
다행히 검은색 옷이라 티가 잘 나지 않아, 한동안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자주 꺼내 입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계속 이렇게 입고 다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해 놓고, 스스로 최소한의 옷만 가지고 살아도 문제없다 자신하지만, 올이 나간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 맞나 싶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더라도, 나는 나를 신경 써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러한 고민 끝에 올이 나간 맨투맨은 비웠다.
요즘엔 인터넷을 며칠 동안 들여다봐도, 마음에 드는 옷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이번에 가족여행을 위해 급하게 바지를 두벌(1+1) 장만했는데, 길이도 짧고 사이즈도 좀 작은 듯한 게 실패한 구매템이 되어버렸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입고 있지만, 앞으로는 귀찮더라도 옷은 매장에 가서 사자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