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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May 05. 2024

내가 ‘사랑’에서 헷갈렸던 한 가지

집착과 사랑 사이

제제가 만들어 준 엄마컵 :)



내가 ‘사랑’에서 헷갈렸던 한 가지,


< ‘더 사랑으로 품어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집착인 것인가 아니면 사랑인 것인가 >


제제의 엄마역할을 하며 매일 밤 나를 참회하게 하는 마음이자, 하늘에 돌아간 나의 가족들과 나를 떠난 인연들에게 드는 마음이다.


누가 내게 말했었다.


“넌 결국 모든 사람에게 예쁨 받고 싶은거잖아” 라고.


혼란스러웠다. 난 정말 인정욕구, 버림받고 싶지 않은 생존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 ㅡ 이것 때문에 친절하고 다정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거북하고 상처가 났어도 말하지 않고 일단 후퇴하고 나부터 되돌아보려는 태도가 이러한 욕구들 때문에 취한 방어기제였을까.



오늘 아침 6시 남천성당 산책하러 간김에 들은 강론에서 신부님이 그러셨다.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쉬워하는 것이 신앙인의 마음’이라고.


삶의 마지막 배웅 장소, 장례식에서 내가 들었던 마음은 늘 “더 잘 해주지 못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우리의 마지막엔 ‘더 사랑으로 품어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나의 노력은 집착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자 하는 진심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에도 고통체와 에고와 함께 실수하고 실패하며 흔들거리고 그렇게 너와 공존하며 살아간다. 아픈 상처를 주기도 하고, 충만감에 넘치는 기쁨을 나누기도 하며 늘 진심으로 살아간다. 쉼표일 줄 알았지만 우리의 마침표가 될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서는 <미안해 고마워 용서해 사랑해> 가 되고 싶다. 그래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마지막일 될 수 있는 순간이니 그저 사랑하고 싶은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


여기에서 ‘서로’는 무슨 의미였을까. 나와 너가 다르지 않으니 모든 이를 사랑하라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서로’가 주는 단어의 의미는 손뼉을 치듯 내 사랑을 허락한 이들과 사랑하라는 의미도 담겼을지도 모른다. 받고 싶지 않은 사랑을 주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나만 사랑하는 것‘으로 욕심일 수 있으니 말이다.


용서, 나와너가 다르지 않음 ㅡ 이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안다면 아마 신부님께서 불가능일 것이라고 했던 ’서로 사랑하라‘가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런 곳이 ’천국‘이지 않을까.  


#Breeze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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