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사랑>
채워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
부족한 것만 보이는 것이었다
이것도
미안한 어미의 사랑이었다
- 장혜인 -
오늘 아침 꾸지람을 듣던 9살 아이는 토해냈다.
"엄마는 왜 자꾸 내가 부족한 것만 이야기 해?"
뱉은 모든 말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고 했던가. 내가 우리 엄마에게 했던 말이었다.
충분하다 인정해주고 믿어주며 지지해주기만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딸인 나이자
자신감이 없어보이고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할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잔소리 해대며 딸이 잔소리 없이 자기답게 척척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인 나이다. 딸의 마음을 이해하며 나를 때리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며 나를 때리며 나는 또 나에게 가혹하다. 있는 그래도 사랑해주고 싶고, 온전히 충분하다 감사하고 싶은데 인정과 칭찬, 지지 대신 부족하다 꾸짖고 잘하라고 호통치는 엄마인 내 모습이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여전히 쉽지 않다. 엄마의 역할은 내려놓아버리고 싶다. 엄마는 하면 할 수록 미안해지기만 하고, 내 밑바닥만 더 처절히 마주하게 되어 나 자신이 보잘 것 없어지는 것 같다. 가장 깊은 동굴의 탐험이다.
그리고 오늘 깊은 동굴 탐험에서 채취한 보물은
'채워주고 싶은 마음에서 부족한 게 보였던 것'
결국 이것도 '사랑' 이었다.
사랑 안에는 고통이 분명히 있다. 아픔, 슬픔, 저항, 고통이 있다. 사랑에서 저항과 고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유혹이다. 지난 주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로 문자나 형상으로만 보았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여정을 적나라하게 보았다. 예수님 역시 두려움 속에서 온전히 그 능욕과 처벌을 철저히 받으시며 걸어가셨고 모든 것을 당하셨다. 흘러가셨다. 받아들이셨다.
사랑하기에 아프다.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임을.
내 중심이 '사랑'임을 믿고 나를 용서하고 나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