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학교를 옮겼다. 다문화 학생 비율이 30%가 넘어서 다문화 특별학급이 설치된 무려 다문화 혁신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3월부터 4월 사이 경 지인들과의 통화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그 학교 어때? 다문화 애들 많은데 다닐 만 해?”
나의 대답은
“네, 아직까지는요. 생각보다 괜찮네요. 나름 재밌어요.”
여기서 ‘내 편’과 ‘남의 편’의 반응이 확연히 달라진다. (평소 ‘내 편’과 ‘남의 편’을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남편의 반응은 여기에 끼워 주지 않겠음. 나는야 글로 복수하는 여자. 후후.)
‘정말 다행이다. 역시 넌 잘 지낼 줄 알았어.’라고 이야기해주는 분들은 내 편.
‘어? 이상하다? 좀 더 지내보고 판단해 보지 그래?’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남의 편.(물론 대놓고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없었지만 말투나 표정에서 저는 다 느꼈습니다. 아, 이것은 신(神) 기인가? 소름.)
나는 ‘남의 편’들의 은밀하고도 음침한 기대를 저버리고 보란 듯이 잘 지냈다. 물론 새로운 학교로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어려움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새 학교에 적응하면서 겪는 어려움인지 다문화학교에 적응하면서 겪는 어려움인지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난 생각보다 괜찮다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요즘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교직 일기는 모두 올해 이야기다. 그런데 몇몇 지인들이 내 글을 보면서 놀라워한다.
“정말 이렇다고? 다문화학교 애들 왜 이렇게 똑똑해! 지금 내가 있는 학교보다 나은 것 같아!”
대부분의 교사는 다문화학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직도 그 편견이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직접 근무하다 보니 많은 부분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늘은 그 오해와 편견을 풀어드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본다. 혹시 다음과 같은 분들이 주변에 있다면 내 글을 공유해 주기 바란다.(이것은 혹시 에세이 영업인가?)
“(이장님께서 하는 마을 방송 버전으로)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하나 둘하나 둘. 다문화 학교에 지원해야 해서 고민하는 교사, 다문화학교에 지원해놓고 잠 못 자는 교사, 다문화학교에 발령받아서 심란한 교사 등 다문화학교와 관련된 모든 분들께 알립니다. 지금부터 다문화학교에 발령받아서 잘 지내고 있는 한 교사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다음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 근무 경력이 채 1년이 되지 않았으니 너무 귀 기울이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다문화학교는 힘들 것 같다는 편견을 헤집어서 이리저리 추려보니 3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학생들은 거칠 것 같고, 대화가 안 통할 것 같고, 학력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편견이다. 지금부터 그 편견에 대한 내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다문화 학생들은 거칠지 않다. '거칠다'라고 함은 언어나 행동이 폭력적이라는 것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올해 나의 교직 일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 참 순수하다. 현재 4학년 담임을 하고 있고 4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다. 풍요 속에 자란 내 아들과 그 친구들보다 다소의 결핍이 있는 지금 우리 반 아이들이 훨씬 순수하다는 것을 느낀다.(어쩌면 '결핍'이라는 것도 내 편견일 수 있겠다.)
둘째, 다문화 아이들과의 소통은 크게 어렵지 않다. 나도 이 부분을 가장 걱정했다. 현재 우리 반에는 러시아어를 하는 학생이 3명이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소통은 놀랍다. 서로서로 도와준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덜 잘하는 학생에게 통역을 해 준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한국어를 진짜 잘하는 다른 반에서 통역사를 빌려온다. 그러면 문제 해결이 쉽다. 그리고 다문화 학생 비율이 높다 보니 통역해주시는 인력, 안내장을 번역해주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급하면 교사가 파파고를 돌리는 방법도 있다.
셋째, 다문화 아이들의 학력 수준은 낮지 않다. 특히 중국계 학생들은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 부모님들은 마치 1970-80년대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처럼 교육열이 높고 선생님께 매우 우호적이다. 극단적으로 ‘혹시 흉기를 들고 민원을 넣으시는 분이 계시면 어떻게 하지?’ 걱정했었는데 그런 건 영화가 만든 위험한 판타지였던 것 같다.
물론 현재 우리 학교에서도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비율로 따지면 그렇게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어느 학교에서나 있었다. 그렇기에 다문화학교라서 더 힘들다는 표현은 하고 싶지 않다.(물론, 지금 이 순간에 교실 속에서 힘들어하시는 선생님들 온 맘 다해 응원합니다.)
또 어떤 분은 내가 올해 운이 좋아서 잘 적응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근데 올해 동학년 진짜 로또입니다! 그건 인정.)
그러나 내년에 또 힘든 상황이 온다면 기꺼이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에도 글을 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혹시 내년에 제 글이 많이 우울해진다면 응원의 커피 쿠폰 부탁드릴게요. 커피 퍼먹고 글 쓰렵니다.)
매일 아침 나는 다문화학교로 출근한다.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힘을 믿는다.
그래서 내년에는 똑같은 대답을 더 우렁차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과 용기를 가져본다.
“다문화학교 생각보다 괜찮네요. 나름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