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으로 전한 진심


“선생님, 세인이 틱이 다시 시작되었어요. 오늘은 쉴게요.”


교실 전화기로 들려오는 세인이 어머님 목소리가 무척 무거웠다. 절망, 좌절, 슬픔이 가득 차 있는 목소리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이대로 전화를 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랬군요. 세인이 요즘에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다시 시작되었나요?”


일단 일상적인 대화로 시간을 끌었다. 병원은 다녀왔는지 약은 어떻게 먹는 것인지 천천히 여쭈어봤다.


세인이는 예민하고 불안이 높은 학생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큰데 항상 친구들 눈치를 많이 본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발표를 했다가도 ‘친구들이 내 발표를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이 들면 금세 불안함에 빠져버리는 학생이다.


그 불안함을 금방 떨쳐버리는 날은 괜찮은데 그게 오래가면 가끔 틱 증상으로 발전된다.


틱 증상이 나타나면 세인이는 또 자책한다. 표정이 더 어두워진다.

“세인아,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 어둠에서 얼른 세인이를 꺼내 준다. 세인이 생각보다 친구들이 세인이에게 관심 없을 수도 있다고 농담으로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불안도가 높았던 나의 어릴 적 시절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조금씩 좋아진다. 그러다가 또 나빠지기도 하고.

이 과정에서 세인이 어머니와 자주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익숙한 목소리인데 오늘은 영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였다.


무너진 어머니의 마음이 바로 느껴졌다.

“어머니, 그동안 세인이 잘 해왔잖아요. 이번에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좀 더 지켜볼게요.”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어야 하는데 또 못 끊겠다.


아침 시간이라서 아이들은 시끌시끌. 교실 전화기라서 통화하러 복도로 못 나간다. 1교시 시작 종이 쳤는데 수업 시작을 안 하니 아이들은 마냥 신났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검지 손가락을 힘껏 세웠다. 빨리 끊어야 하는데 해드리고 싶은(아니 해 드려야 할 것만 같은) 말들이 너무 많다.

수업이고 뭐고 일단 급한 불을 꺼야 할 것 같았다. 숨 쉴 시간도 없이 긴박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어머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지 마시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보세요. 제가 틱 겪는 친구들을 진짜 많이 봤거든요. 제가 많이 봤을 정도면 전국에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보니까 틱에 집중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담담하게 일상을 이어가시면 됩니다. 세인이가 예민한 친구라서 어머님이 무너지면 다 눈치채는 친구잖아요. 또 엄마가 괴로워하면 더 괴로워할 착한 친구인 것도 아시죠? ‘왜 내 아이만 이럴까?’ 이런 생각이 제일 위험한 거 아시죠? 그냥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하시고 편안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보세요. 그럼 어느 순간에 괜찮아질 거예요. 그동안도 그랬잖아요. 아시겠죠?”

“네. 흑흑.”

전화기 건너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휴. 랩으로 전한 진심이었는데 다행히 배달 사고는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정말 위로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네. 어머니 또 전화드릴게요. 힘내세요.

(전화 끊고) 얘들아! 국어책 펴!”

급히 전화를 끊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국어책 1번 문제를 풀라고 안내해놓고 물 한잔을 들이켰다.

“후.”

정신이 좀 돌아왔다.

‘야! 진짜 엑기스 상담이었다. 효과도 굉장했다고!’


자아도취 시간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내 자기 검열에 들어간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괜한 말을 한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빠르게 내 이야기만 랩처럼 쏟아부은 건 아닐까?’

그 순간 래퍼 아웃사이더의 가사가 떠올랐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진심만 닿았다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수고했어 오늘도.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랑 국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