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 국화


주말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쏟아지는 가을 햇볕 아래 반짝이는 노랑 국화 화분이 눈에 띈다. 며칠 전 시어머니께서 갖다 주신 화분이다. 평소의 나답지 않게 왠지 물을 주고 싶다. 물통을 들고 가을 햇볕을 받으며 물을 주렸는데 홀로 켜져 있는 텔레비전에서 슬픈 소식이 들린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속보입니다.”


한 손에는 물통을 든 채로 다른 손으로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인다. 아비규환의 현장의 모습이 보인다. 가슴이 쿵.


한참 뒤, 다시 국화에게 간다. 소담히 핀 노랑 국화꽃들을 조심스레 매만져 본다. 찬란한 노랑 국화가 아프고 슬프다. 어찌하지 못하는 이 마음을 시로 적어보면 좀 나을까 싶어 조용히 책상에 앉아 본다. 감정은 요란한데 한 글자가 안 나온다. 결국, 수첩에 남겨진 건 글자 대신 조용한 눈물.


“엄마, 진짜 사람들이 죽었어?”


아들이 한마디 건넨다. 차분히 설명해준다.


“아. 내일 우리 반 애들 주려고 핼러윈 간식 준비했는데.”


‘주고 싶은 마음’과 ‘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들에게 차분하게 선택권을 준다.

어두운 주방에서 혼자 설거지를 한다. 여러 가지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하다.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려 본다. 멀리 있는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고자 애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너무 애쓰지 말자고 고개를 저어 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마음이 두렵다.


갑자기 길을 잃었다.


새삼스럽게 이 나이에 왜 길을 잃었을까? 그것조차 부끄럽다.


내 맘 편하자고 차라리 외면해버렸던 모든 시간들이 내게 주는 벌 같다.


무엇이 내 생각이고 무엇이 남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얼마만큼,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이 고민도 틀린 건가?


아무도 답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소파에 앉아 도망치듯 핸드폰을 들었다. 대한 신경정신의학회 성명서를 만났다.


첫째, 여과 없이 사고 당시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둘째, 혐오 표현의 자제가 필요합니다.

셋째, 언론은 재난 보도 준칙을 준수해야 합니다.

넷째, 대한 신경정신의학회는 이번 참사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분들의 회복을 위해 함께하겠습니다.

지혜로운 이웃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괜찮다고, 더 성숙해지면 된다고 나를 위로해줬다. 한없이 가라앉아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다시 노랑 국화를 매만지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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