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말, 동학년 송년회가 열렸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고급 진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커피숍으로 향했다.
2차 수다에서는 한 해 동안 활발하게 활동했던 각반의 VIP((Very Important Person)의 줄임말, 교사들은 지도하기에 어려운 학생을 이렇게 부른다.) 학생들과의 에피소드가 쫘악 펼쳐진다.
선생님들 앞에서 한바탕 풀어내고 나면 속이 시원하다. 더 감사한 것은 기분 좋은 칭찬과 따뜻한 위로다.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기에 해줄 수 있는 깊이 있는 공감이 있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한 선생님께서 문득 한 마디를 꺼내셨다.
“작년 이 맘 때 저는 노래 연습을 했어요.”
“왜요?”
“너무 예쁜 6학년 아이들한테 졸업식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싶었거든요.”
“진짜 불러주셨어요?”
“네.”
“무슨 노래 불러주셨어요?”
“폴킴의 안녕이요.”
요즘 남편 차에서 폴킴 노래를 잔뜩 들었던 나는 제목만 들었는데도 이미 슬펐다.
“아이들 앞에서 떨리지 않으셨어요?”
“안 떨려고 차에서 30번 정도 혼자 연습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당일에 역시나 떨리더라고요.”
“아이들 반응은 어땠어요?”
“사실, 우리 딸내미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엄마가 노래 부르는 장면을 졸업생들이 찍어서 나중에 놀림감이 될 수도 있는데 그거 꼭 해야 하냐고 말리더라고요.”
“그런데 무사히 잘하셨어요?”
“제가 중간에 울컥해서 몇 번을 다시 불렀는데 아이들이 끝까지 숙연하게 잘 듣더라고요. 근데 아이들이 그렇게 들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와! 정말 멋진 선생님과 아이들이네요!”
“별말씀을요. 아이들이 진짜 예쁜 아이들이었어요. 그런데 웃긴 건 혼자 연습할 때마다 오열했다는 거예요. 아들, 딸 학원 데려다주면서 차에서 연습했는데 그 아이들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저를 보더라고요. 하하하하하.”
그 선생님은 웃으면서 우셨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나도 같이 웃으면서 울었다.
‘안녕 이제는 안녕. 이 말 도저히 할 수가 없어. 너로 가득 찬 내 마음.’
가사를 곱씹어 보았다. 갑자기 우리 반 아이들이 떠올랐다. 일 년 동안 아이들과 보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2022년 2월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출퇴근 시간이 더 길어진 새 학교, 처음 보는 동료 선생님들, 그리고 경험해 보지 못한 다문화 학교. 뭐 하나 맘에 드는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내 맘대로 고를 수도 없었다. 그저 주시는 대로 받아야 했던 2월의 불안감. 그리고 치유받지(?) 못한 채 맞은 3월.
그때의 감정들이 살아났다. 그때의 나는 오늘의 행복감을 감히 기대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들을 할 수 있을지도, 그것을 이렇게 글로 담아낼 수 있을지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더 미안하고 더 고마워졌다.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았다는 것이 명백했다. 아이들이 퍼부어주는 사랑을 마구마구 받았던 감사한 2022년이었다.
갑자기 감수성 100퍼센트가 되어버린 채 선생님들께 질문을 던졌다.
“아. 저도 마지막 인사로 폴킴의 안녕을 불러야 할까요?”
“음... 선생님. 노래 잘해요?”
“아... 며칠 안 남았는데? 괜찮겠어요?”
갑자기 이성이 100퍼센트로 충전되었다.
“아. 그렇죠? 무리겠죠?”
그리하여 마지막 인사는 노래가 아닌 허그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후에 4학년 4반 학생들은 담임교사와의 허그는 대충 하고 성적표에 쓰여있는 5학년 반에 정신이 팔려 교실을 미련 없이 떠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