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동학년 선생님들은 고구마에 빠져있다. 아침마다 부지런히 구워다 주시는 따뜻한 선배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는 맥모닝 대신 ‘고구마 모닝’의 시간을 갖는다.
고구마로 예열된 우리들은 바로 수다로 직진한다. 오늘의 수다 주제는 초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다.
20년 전 어느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사연이다. 남학생은 방과 후에 신나게 오백 원어치 간식을 사 먹고 집에 들어갔다. 아들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던 부모님은 그 돈의 출처를 추궁했다. 소년은 해맑게 친구가 돈을 주어서 맛있는 것을 사 먹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기에 담임교사에게 전화했고, 다음날 담임교사는 돈을 받은 소년과 돈을 준 소녀를 소환했다. 소녀가 소년에게 오백 원을 준 일은 사실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1학년 학생들이 오백 원이라는 큰돈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거래였기에 담임교사는 혹시 협박이나 모종의 채무 관계(?)가 있는지 낱낱이 조사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시작한 담임교사의 취조 활동은 이렇다 할 결실 없이 허무하게 끝이 났다.
“어제 아빠가 저한테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오백 원을 주셨어요. 그런데 저는 제가 먹는 것보다는 00 이가 먹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냥 00 이한테 줬어요. 00한테 오백 원 줘서 기분이 좋았어요.”
소녀의 순순한 사랑을 오해했던 담임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오늘 남편에게 이유 없이 오백 원을 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먹는 것보다는 당신이 맛있는 거 먹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급히 가방 속에서 오백 원을 찾아서 챙겨놓고 멋진 멘트까지 준비한 오전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업무 때문에 팩스를 주고받을 일이 생겼다. 수업을 마치고 후다닥 행정실로 내려가서 팩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왕!”
다른 학년의 한 젊은 여자 선생님이 내 등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응?”
친하지 않은 선생님의 진심이 담긴 장난에 조금 당황했다. 이것은 마치 운전 중에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뒷 차가 와서 쾅 박은 느낌이었다.
“앗, 죄송해요. 선생님 다른 분인 줄 알고 장난쳤어요. 놀라셨다면 정말 죄송해요! 너무 놀라셨죠? 정말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무 생각 없이 팩스 나오는 구멍(?)만 쳐다보고 있었기에 훅 들어온 장난에 깜짝 놀라긴 했다. 교통사고 피해자처럼 뒷 목을 한 번 잡아볼까 했는데 상대방 선생님이 죄송하다는 말을 백 번쯤 하면서 매우 조아리는 모습을 보니 웃으며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미안하면 오백 원!”
“하하하.”
일단, 어색한 분위기는 해결. 그런데 나를 누구로 착각했는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5학년 5반 선생님이신 줄 알았어요! 제가 그 선생님이랑 친하거든요.”
음. 5학년 5반 선생님이라. 올해 학교를 옮긴지라 몇 학년 몇 반 선생님이라고 하면 바로 딱 떠오르지 않아서 누군지 떠올리는데 시간이 다소 걸렸다.
띠로리리리. (이것은 저의 두뇌 풀가동 소리입니다. 지루해도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앗! 그분은 20대이며 무척 아름다우시고 늘 미소가 아름다우신 분!
“어머! 그 20대 선생님?”
“네, 선생님 뒷모습이 진짜 똑같았어요.”
“어머, 나 뒷모습은 20대인 걸로?”
“네네. 정말 젊어 보이세요!”
“어머! 고마워요. 앞으로는 뒤로 걸어 다녀야겠네. 호호호”
옆에서 우리의 어이없는 대화를 듣고 계시던 행정실장님께서 한마디 거드셨다.
“선생님, 오백 원을 받으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셔야겠어요!”
“아 그러게요. 오백 만원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하하하하하.”
미안하지만 그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오백 원을 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편의점으로 갔다. 나의 소중한 오백 원에 돈을 살짝 더 보태 비타 500을 샀다. 그리고 어제 그 선생님에게 바로 갖다 주었다.
가방 속 오백 원이 주인을 제대로 잘 찾아간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