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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담임이 써야 하는 이유


폭풍 같은 목, 금요일을 지내고 드디어 고요한 토요일 아침을 맞았다. 

아이들과 만난 시간은 단 2일, 그러나 체감상으로는 20일. (아니 영겁의 시간.)

후. ‘쓰나미’ 급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역시 1학년 아이들의 여운은 깊고 진하다. (요즘 글에 ‘후’가 많이 등장하네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후.)

지난 이틀 동안 우리 집에서 가장 말을 많이 한 사람은 나였다. 퇴근길에 남편에게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랩처럼 쏟아내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아까 하지 못한 이야기가 생각나서 또 쏟아냈다. 또,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힘들었던 이야기를 압축 정리해서 쏟아냈다. 1학년 교사인 남편은 ‘당신 학급은 다문화, 특수학급 학생으로 유난히 좀 더 힘들어 보이긴 해.’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이틀 동안 입학식 이야기, 급식 이야기를 글로 썼지만 사실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아침에 교실을 못 찾아온 학생, 교실을 거침없이 막 돌아다니고 친구들에게 심한 장난을 친 특수반 학생, 한국어를 못하는 우즈베키스탄 학생, 러시아어를 하는 친구의 발음에서 ‘시바’를 듣고 나에게 이르는 학생, 돌봄이 아닌데 돌봄교실에 가서 앉아 있던 학생, 하교 후에 바로 집에 가지 않아서 실종 신고를 해야 하나 고민하게 한 학생이 있었다. 이 학생들은 모두 둘째 날 만났던 학생들이다. 이 모든 일이 단 하루 동안 우리 반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무려 단 하루 동안 말이다! (화난 거 아닙니다. 후. 릴랙스.)

아마도 예전의 나 같았으면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되어 바로 침대에 뻗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이틀은 집에 와서 기어이 글을 썼다. 도대체 나는 왜 썼을까?

첫째, 애들이 너무 웃겨서 썼다. 작년 2학기에는 4학년 아이들과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글로 썼다. 매일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급하게 휘갈긴 메모와 기억을 더듬어 썼다. 글감이 도저히 나타나 주지 않는 날은 수업을 더 열심히 했다. 미안하지만 글감이 필요했다. 그런데 1학년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이틀 만에 알게 되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하루에도 글감이 수십 개씩 쏟아진다. 글감을 찾아 헤매는 상거지 같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 그야말로 슈퍼 리치다. 할렐루야!

둘째, 힘든 하루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썼다. 입학식 날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날 있었던 아이들과의 이야기가 너무 웃겨서 진짜 흘러내릴 것만 같은 몸뚱이를 컴퓨터 앞까지 질질 끌고 가서 썼다. 그런데 쓰다 보니 복잡했던 감정이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무겁고 복잡한 마음은 휘발되고, 다음날 출근할 수 있는 조금의 용기와 힘을 얻었다. 다음날 아모르파티를 기대하며 출근했는데 교실은 나에게 대 환장 파티를 선사했다. 그래서 집에 와서 또 썼다. 힘든 하루가 정리되는 그 느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정지음 작가님의 ‘오색찬란 실패담’이라는 책 제목처럼 실패한 하루는 글로 쓰는 순간 오색찬란해졌다. 

셋째, 혹시나 이렇게 하다 보면 또 출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흑심 때문에 썼다. 감사하게도 작년 2학기부터 꾸준히 쓴 교직 에세이가 곧 책으로 출간된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계약금이 입금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꾸준하게 쓰면 나같이 책 많이 안 읽고, 글을 잘 못 쓰는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감사했다. 꾸준함의 힘을 실감하고 나니 또 쓰고 싶어졌다. 그 흑심이 이번 1학년 학급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다. 

교직 에세이는 흔하다. 그러나 절대로 같은 교실은 없다. 100개의 교실은 100개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야기가 교실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 순간을 잡을 것인가 놓칠 것인가는 결국 선생님의 결심(?)에 달려있다. 

1학년들과 이야기를 인스타에 올렸더니 올해 1학년을 맡은 교사 친구의 댓글이 달렸다.

‘나 어제 밥 못 먹음. 나 하교 지도 후 애 하나 사라져서 지옥 다녀옴.’

어제 지옥 다녀온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내 친구를 힘껏 안아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갑자기 이틀 동안 애썼을 전국의 1학년 선생님들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나의 주특기인 오지랖이 발동되었다. 문득 내가 기어이 쓰는 이유를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칠수록 더 쓰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었다. 내가 경험한 기록이 주는 치유와 성장을 알려주고 싶었다.

“전국의 1학년 선생님들! 1학년 교실 이야기 많이 써 주세요. 누구를 위한 글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글을 쓰세요. 놀라시겠지만 매일 수십 개의 글감이 선생님 교실에서 자동 생성됩니다. 글감 앞에서 너무 열받지 마시고 ‘오히려 좋아!’하면서 그것을 글로 쓰세요. 그러면 쓰레기가 보석이 됩니다. 선생님들은 이미 글감 계(?)의 슈퍼 리치이십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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