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송아, 작은 누나네 놀러 갈까?"
심심한 표정으로 바닥에 누워있던 뽀송이 얼굴이 금세 반짝 거리는 기대로 가득 찼다.
올해로 열두 살, 강아지로서는 꽤 연륜이 쌓인 나이라서 그런지 뽀송이는 가족들 간의 대화를 곧잘 알아듣는다. '산책', '밥', '간식' 등등 간단한 단어는 당연하고, 꽤 긴 문장도 나름대로의 해석 요령이 있는지 잘 유추해서 듣는다.
"쟤 봐라, 난리 났다."
엄마와 할머니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뽀송이를 쳐다보았다.
뽀송이는 왕왕 짖어대며 말을 꺼낸 내게 얼른 가자고 독촉을 했다. 내가 산책 가방을 주섬주섬 꺼내는 것도 느려터지다고 생각했는지 내 방까지 들어와서 짖어댔다.
"이따가 YJ(동생 이름)에게 이 반찬이랑 밥 먹으라고 해라. 그리고 올 때 혹시 걔네 집에 있는 우리 집 반찬통 가지고 올 수 있겠니?"
엄마가 재빠르게 동생에게 챙겨줄 반찬통을 꺼내서 내게 넘겨주었다. 그 짧은 과정을 못 참은 뽀송이가 엄마를 향해 반항적으로 짖었다. 누가 K-강아지 아니랄까봐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성격을 자기도 닮아서 저 난리다. (근데 얘는 몰티즈라서 영국 강아지인데...?) 엄마가 자기 마실 나가는 걸 방해하는 것 같은지 엄마 눈을 똑바로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이다.
"얼른 가야겠다. 다녀올게요!"
배변봉투, 여분의 휴지들, 물병, 동생에게 줄 반찬통을 바리바리 챙기고 뽀송이 산책 리드줄을 매고 비장하게 나왔다. 그리고 나오자마자 뽀송이를 품에 안고 조금 걸었다. 그 이유는, 얘가 산책하러 갓 나왔을 때는 너무 흥분한 상태라서 계속 짖기 때문이다. 조금 안정을 시킨 후에 바닥에 내려주어야 한다.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뽀송이는 불만이 가득해서 내 품에서 발버둥을 쳤다. 빨리 저기에다가 내 영역이라고 표시해야 하는데, 왜 자꾸 날 안고 안 놔주는 거야?! 비록 말을 못 할 뿐이지 온몸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르르르..."
마지막 경고라는 듯이 뽀송이가 콧김을 내뿜으며 아르릉 거렸다. 주위에 오토바이가 지나가지 않는지 확인한 후(오토바이를 보면 온동네가 떠나가라는 듯이 짖는다. 언젠가부터 이랬는데, 오토바이에 굉장히 놀란 적이 있었나보다.) 바닥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콧바람 쐬러 나와서 신난 뽀송이가 3보 1킁 하는 바람에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인 동생네 신혼집을 세월아 네월아 하며 걸어갔다. 중간중간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서 서로 냄새도 맡고 꼬리도 흔드느라 시간이 걸리고, 시원하게 응아를 하고 내가 그걸 또 치우느라 시간이 걸리고... 아무튼 체감상 30분 정도 걸은 후에 동생 신혼집에 도착했다.
"뽀송이 왔어어어~??"
뽀송이의 찐팬인 동생이 어쩔 줄 몰라하며 뽀송이를 반겼다. 하지만 그런 동생의 과한 애정을 옛날부터 많이 부담스러워하던 뽀송이는 고개를 휙휙 돌리며 동생의 얼굴을 피했다. 그렇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는 동생이 도망가려는 뽀송이를 억지로 안고 뽀뽀를 퍼부었다. 손 씻고 거실로 와보니 뽀송이가 살려달라는 절박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쩜 이렇게 귀엽지~!! 배방구우~~!! 아야!"
나름 동생네 집이라고 꾹꾹 참았던 뽀송이가 한계점에 도달했는지, 동생 손가락을 가볍게 물었다. 그냥 늘 이런 식이기 때문에 물린 동생도 잠깐만 아파할 뿐, 아무렇지 않아 한다.
"야, 그만하고 이거 봐봐. 엄마가 주셨어."
"우와! 뭘 또 이런 걸 다 주셨어? 엄마 힘들게... 안 해줘도 된다고 그래."
내가 반찬통을 꺼내자 동생과 뽀송이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동생은 저녁 뭐 먹을까 고민하던 참에 잘 된 것이었고, 뽀송이는 자기 간식 주는 줄 알고 좋아한 것이다.
"언니, 아아 먹을 거지? 여기 치즈케이크랑 먹어. 뽀송아, 니 건 없어."
동생이 배달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치즈케이크를 꺼냈다. 새삼 커피도 배달이 되는 시대에 감사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켠 후 치즈케이크를 몇 입 먹었다. 옆에서 뽀송이가 자기도 달라면서 애절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동생네 집에는 강아지가 먹을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끔 강아지용 간식을 일부러 몇 개 챙겨와서 주곤 하는데(마실 왔는데 아무것도 안 먹으면 좀 섭섭하니까) 오늘은 깜빡했다.
하지만 강아지에게 치즈 케이크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냥 안고 달랬다. 이따 집에 가서 간식 줄 테니 조금만 참아~하며 둥기둥기 해주니 알아들은 건지 아까처럼 애절하게 쳐다보지는 않고 홱 돌아 누웠다. 지금 네게 줄 것은 없어, 라는 뉘앙스는 제대로 알아듣긴 한 모양이다.
맛난 케이크와 커피를 곁들여서 동생과 끝없는 수다를 떨었다. 그 사이에 뽀송이가 거실 구석에 있는 공기청정기로 슬쩍 다가갔다. 그 장면을 예리하게 목격한 동생이 안돼!를 외치자 공기청정기에 자신의 영역 표시를 하려던 뽀송이가 움찔하고 아닌 척 하며 다시 걸어와서 우리 자매와 등진 채로 털썩 누웠다. 쟤 삐졌다. 동생과 내가 히히덕 거리면서 그 삐진 표정도 핸드폰 카메라로 담으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와 동생 핸드폰 사진첩에는 뽀송이 사진이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 가야겠다."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내가 말을 꺼내자, 뽀송이가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왕왕 짖었다. 얼른 우리 집으로 가자, 누나!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별로야!(특히 집주인이 별로야!)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동생네 놀러오는 것 자체는 기분전환도 돼서 좋아하는 것 같은데, 막상 와서 오래 있으면 심심해한다.
"우리 애기,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어떨까?"
동생이 아쉬워하며 말했지만, 그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몇 달 전에 동생이 뽀송이를 본인 집에서 재우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하고 두고 갔었는데 뽀송이가 바뀐 잠자리 탓인지 밤에 잠을 못 자고 계속 현관문 앞에 오도카니 서 있던 것이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대쪽같은 뽀송이는 오직 아빠만 기다렸다. (가족중 아빠를 제일 좋아한다.) 아빠가 얼른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기를 여기서 구해줄 거라 믿었는지, 뽀송이를 위해 거실에 이불을 펴고 누워있던 동생에게는 눈길도 안 주고 현관문만 뚫어져라 응시한 것이다.
결국 동생도 잠을 제대로 못 잔 채로 밤이 지나갔고, 우리집에서는 아침일찍부터 아빠가 뽀송이를 구하러(?) 동생네로 출발하셨다. 약 8시간 만에 아빠를 본 뽀송이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이 펄쩍펄쩍 뛰며 난리법석을 피웠고, 아침부터 동생 신혼집에 가시느라 귀찮으셨을 법도 한데 아빠는 그런 기색 없이 의기양양하게 뽀송이를 데리고 집으로 무사히 데리고 오셨던 것!
동생네서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다음날 우리집에서 뻗은 뽀송이 @MJ
그 사건(?) 이후로 우리 가족은 '우리는 이 애를 두고 어디 못 간다.' 이걸 절실히 느꼈다.
사실 뽀송이가 좀 더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휴가 시즌에는 강아지 호텔이나 친한 친구집에 맡기고 가족끼리 놀러가곤 했었다. 그런데 뽀송이가 나이가 한두 살 많아지면서 겁도 늘었는지 우리 가족이 한 명도 없는 곳은 무서워해서 어느 순간부터 아예 다른 곳에 맡기지 않았다. 가족 구성원인 동생 신혼집에 가서도 그렇게 불안해하는데(슬프게도 평소에 동생을 별로 안 좋아해서 더 그런 듯) 남에게 어찌 맡긴단 말인가. 그래서 가족 행사가 있어서 다같이 외출을 할 때도 꼭 집에 누군가는 남아서 뽀송이와 함께 있는다. 되도록이면 아빠나 나 둘 중에 한 명은 집에 남아 있는다. (뽀송이가 아빠를 제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날 좋아하기 때문이다!) 작년 가족끼리 간 외국여행에서도 나는 뽀송이와 집에 남아 연휴를 보냈었다.
아직도 우리 가족 눈에는 그저 한 두 살 먹은 강아지 같은데,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 열두 살 어른 강아지가 되었을까? 그래서 거리에서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이 "아이고, 열두 살이라니 할배네, 할배!", "나이가 진짜 많네!"라고 말하면 괜히 좀 반감이 생기기도 한다. 내게 뽀송이는 아직도 아기 강아지같이 보이기 때문인가 보다.
자기도 맛있는 걸 달라며 예쁘게 앉은 뽀송이(in 동생 신혼집) @MJ
언제부터인가 밤마다 짧게 기도를 하게 되었다.
기도라고 해봤자 오늘 무엇 무엇이 이랬고 저랬고, 좀 속상했던 것도 일도 있었고 등등을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마지막은 늘 '우리 뽀송이가 오래오래 우리 가족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 주세요.'라고 소망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아마 반려동물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테다. 진심으로 그 바람이 다 이루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