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또 저 노래다"
'타닥타닥' 타이핑 소리만이 가득한 학보사 적막을 깨부순 것은 밴드 동아리 연주 소리였다. 학생회관에 동아리방을 둔 밴드는 매일같이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 한 곡만을 연습했다. 밴드를 잘 알지 못하는 나조차도 느낄 수 있는 어수룩한 연주 실력이 학생회관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들이 만들어낸 눈에 보이지 않는 노랫소리는 사실 구체적인 형상이었다. 어떤 뚜렷한 청춘이었고, 젊음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학보사에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연주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내 옆에 앉은 누군가는 '저렇게 큰 소리로 연습할 거면 잘하기라도 해야지.'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가?'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멋있지 않아요?"라고 옹호할 마음의 여유는 없었고 말꼬리가 붙지 않은 그 말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얼마 후 나는 학보사를 그만뒀고 더 이상 밴드와 같은 시간과 공간에 섞일 일은 없었다.
케케묵은 기억 속 밴드를 다시 환기시켜준 것은 영화 족구왕이었다. 족구왕은 군 제대 뒤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온 복학생 만섭이 대학에 다시 족구를 유행시키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2점 초반대의 학점, 전무한 토익점수까지 반골기질의 스펙을 가진 만섭은 취업준비 대신 족구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도리어 "남들이 싫어한다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사는 것도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라며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대답을 내놓는다.
처음 대학에 입학한 3월, 창업과 취업을 위한 동아리 홍보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은 게시판 구석에 드럼이 그려진 노란색 밴드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게시판 앞을 서성이며 연락을 할까 말까 고민했다. 취업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잘하는 악기가 없어서, 노래를 잘하지 않아서 이런 저러한 핑계를 만들어 내 마음을 속였고 결국 제삼자로만 그들의 연주를 엿들었다. 공연 한 번 보러 간 적 없는 밴드가 만들어낸 선율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잔상이 남는 이유는 분명 연락 한번 해보지 않은 아쉬움 때문 이리라.
밴드의 노래를 엿듣던 스물한살의 나는 이십대 후반 어른이 됐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들을 때마다 하고 싶은 일을 앞에 두고 주춤하던 스무살의 나를 떠올리며 이것저것 재지 말고 조금은 단순하게 살자고 다짐한다. 다시 돌아간다면 그 시절 나에게 '중간에 그만둬도,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선 현재 내 어리숙함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30대에 스물하나, 스물다섯을 들으며 20대 후반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