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해진 바람
폐포 사이사이 깊숙이
당신과의 추억 스며들 쯤이면
올해 가을도 찾아왔구나
슬퍼지련다
당신은 봄을 닮았지만
우리 추억은 가을에
더욱 쓸쓸히
땀 흠뻑 흘린 계절 지나
한 김 식혀 나른해진 바람 불어오면
피아노 건반 보다 아련해지는
당신 목소리 가을 향기
이젠 만날 수 없는 당신 대신
숨을 한참 들이쉬며
잔뜩 부풀린 추억 담고서
이유 모를 울음 내뱉는다
그리고 다시 선명하게
들이닥치는 그대 계절의 향기
손끝 아려 감히 만져볼 엄두조차 못 내는
차디찬 겨울에는 단념하여도
손 닿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아쉽게만 떨어지는 낙엽은
자꾸만 당신을 떠오르게 한다
왈칵 터져 나오려는 마음 애써 참아보며
소중히 말린 낙엽 갈피 행여나 부스러질까
조심스레 다시 제자리에 넣어둔다
가을 오면 잊지 않고 꺼내어 보는 한 페이지
점점 얇아지고 바스라지는 야속한 조각들
시간 따라 삭고 닳아 풍화되고 마는 기억
언젠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까
들춰 꺼내어보는 것조차 두려운
떨어져 버린 조각들
내가 가장 사랑해서 당신에게 보낸 시와
내가 가장 사랑해서 보내지 못한 시
두 페이지 사이에 촘촘히 끼여있다
그마저도 소중해 털어내지 못하고
한 톨이라도 잃어버릴까
애써 모아 덮고 마는
그 페이지 사이
당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