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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Jul 05. 2023

핼러윈은 처음이야

사탕보다 달콤했던 하루



순식간에 동네는 놀이공원이 되어 버렸다


자주 가던 마트 앞에 노란 호박들이 한가득 쌓여 있다. 거리는 기대감에 들떠있는 사람들로 춤을 추고 나무는 점점 붉어진다.

10월의 어느 가을, 모두 핼러윈을 기다리고 있다.


블랙 팬서 복장을 한 첫째와 엘사 옷을 입은 둘째는 등교 전부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친구들이 무슨 옷을 입고 올까, 캐나다의 핼러윈은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엉덩이를 흔들며 학교로 들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늘 하루가 저 뒷모습처럼 티 없이 행복하길.




온 동네에 코스튬을 입은 가족과 아이들이 거리마다 쏟아지고, 가게들마다 사탕과 초콜릿을 한아름씩 나누어주었다. 어린이 서점에서는 나무인간과 마이클잭슨이, 스타벅스 앞에서는 빨간 머리의 요정이, 베이커리에서는 잭스패로우가 초콜릿을 나누어주었다.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탕을 받기 바빴다.


“꽥, 꽥꽥꽥”


무슨 소리지? 뒤를 돌아보니 커다란 닭 두 명(?)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앞이 보이기는 하는 걸까? 아이들과 나는 박장대소하며 지나가는 이들의 코스튬에 감탄했다. 이들은 핼러윈에 진심이구나. 늘 지나던 거리였는데,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았다.



최고로 재밌는 핼러윈이야!
또 이런 핼러윈을 보낼 수 있을까?


영화에서 보던 핼러윈을 기억한다. 어린 시절 아련하게 남아있던 그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밤이 어둑해지면서 우리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졌다. 커다란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아이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멋지게 핼러윈 장식을 한 집들이 여럿 보였다. 이제 문을 두들기고, 사탕과 초콜릿을 받으면 된다.


“Trick or treat!”


멀찍이 떨어져서 아이들을 지켜보는 내 가슴도 쿵쾅거렸다. 사실 핼러윈에 사탕을 받으러 다니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처음부터 흔쾌히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이곳의 문화라 해도 그냥 이 분위기를 즐기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내심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1% 부족한 나를 채워주는 것은 아이들의 용기이다.


문이 열리고, 다시 문이 닫혔다. 밝은 표정으로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뛰어오는 둘째가 보인다.


“받았어! 사탕이랑 초콜릿이야!!! 내가 받았다고!”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바구니가 꽉 차서 휘청거릴 정도로 사탕과 초콜릿을 받으러 다녔다. 처음에는 마냥 문을 두들기기 바빴지만, 여유가 생기면서 사람들에게 코스튬 멋지다며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었고, 생애 최고의 핼러윈을 보내고 있었다.




발이 저릿했다. 얼마나 걸은 걸까. 아이들이 받아온 사탕과 초콜릿을 세어보니 300개가 넘었다.


“이 많은 걸 다 먹을 수 있겠어?”


걱정하는 나와 달리 아이들은 마냥 행복한 표정이다.


“무슨 사탕부터 먼저 먹을까? 너무 고민된다~~”


커다란 사탕봉지를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 다른 고민을 하며, 그렇게 달콤했던 하루를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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