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은 엄마, 남고 싶은 아이들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노란 단풍이 거리를 채우는 늦가을, 갑자기 낯선 눈이 내려 겨울이 되는가 싶더니 다시 완연한 가을이다.
10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도 나도 이곳이 점점 익숙해지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거리들이 정겨워진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그동안의 적응기가 끝나고 이제 시작이라 한다. 맞다. 여기에서 이러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진다면 우리는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해졌다는 것은 내게 떠나야 할 때라는 신호다. 가슴 뛰는 순간들이 일상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캐나다에 와서 하고자 하는 것이 잘 수행된 것이므로. 이별에 아쉬움이 느껴진다면 우리의 시간이 그만큼 행복했던 것이므로.
떠나야 한다.
내가 한국 갈 날짜를 하루하루 세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다시 일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밴쿠버가 왜 좋아?"
"자연이 좋아. 나무, 산, 곰, 너구리, 청설모 모두"
"그리고 또 뭐가 좋아?"
"학교가 좋아. 그냥.. 학교 생활이 재밌어."
재밌어. 란 마지막 말이 가슴에 남는다. 아이들에게 내가 늘 묻는 말. 재밌었어? 오늘 어땠어?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 것은
나도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흙을 만지고, 산딸기를 따먹으며 바람에 떨리는 나뭇가지 소리를 듣는다.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에 몸이 젖어도 웃음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소중한 시간을 덧없이 흘러 보내는 것 같아 불안감이 들었다.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가는 시간들이 내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캐나다에 더 있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동안 보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교육 현실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들은 내게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희망적이다. 하지만 남들과 비슷하게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나라의 현실이, 사실은 더욱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까.
나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하거나 무엇을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어른’으로써 겪고 있는 나의 현재를 기준으로 ‘행복’의 잣대를 그었다.
어린아이 일 때는 어린이로- 행복하기 위해 그 순간을 사는 것일 텐데, 내게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였다.
캐나다에 와서야,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에서 벗어나 온전히 제 모습을 찾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처럼, 아이들의 이 시간도 지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 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오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아있는 시간을 최선을 다해 지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