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옆 노숙자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을 포기하기도 한다는 것을
주말을 맞아 다운타운에 위치한 밴쿠버 아트 갤러리를 갔다. 다운타운을 갈 때 ’씨 버스’라 불리는 배를 타곤 했는데, 아이들과 나는 이 배를 타는 것을 좋아했다. 마치 노아의 방주처럼, 커다란 배는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다양한 색의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묘한 소속감을 느꼈다. 희망을 품고 낯선 땅에 온 이들이 우리뿐이 아니라는.
경적이 울리고 씨버스에서 내려 카드를 찍으려는데, 낯선 사람이 우리 뒤를 쫓아 순식간에 개찰구를 통과한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놀란 아이들을 다독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초점 잃은 눈빛으로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노숙자구나. 말로만 들었던.’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노숙자를 이곳 다운타운에서는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는 미술관으로 가는 동안 다양한 면면의 노숙자들을 마주했다. 약에 취해 히죽대고 있는 사람, 바닥에 그림을 그리다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 동전을 달라고 손을 내밀며 다가오는 사람… 눈이 동그래진 아이들은 흠칫 놀라며 숨을 죽였다.
“엄마, 이 사람들은 왜 거리에서 자고 있어요?”
“이 사람들은 거리에서 살아. 집이 없어. 그래서 이들을 ‘홈리스’라고 부르지. “
첫째 아이가 먹던 음료수를 버리러 쓰레기통으로 다가갔다. 음료가 조금 남은 컵을 버리고 돌아서는데, 노숙자 한 사람이 황급히 쓰레기통을 뒤졌다. 아이는 깜짝 놀라 내게 달려왔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되는 걸까.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 또한 밴쿠버의 일부이고 현실이다. 안락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사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세상은 모두 아름다운 모습만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아이들에게 숨기고 싶지 않았다.
엄마, 나중에 나 홈리스 되면 어떡하지?
거리의 노숙자를 뒤로 하고 미술관으로 들어섰을 때, 둘째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묻자, 아이는 미래는 모르니까.라고 대답했다. 적어도 아이는 거리에 앉아있는 이 사람들이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나는 대답대신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텐데, 무엇이 그들을 거리에 살게 하였을까?”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겼지만 원하는 답이 떠오르지 않는지 말이 없었다. 사실 우리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흐르지 않고 예상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풀리지 않는 질문 하나를 안고 밤새 얘기하다 잠들었다.
미술관을 본 건지 노숙자를 본 건지 모를 하루를 보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