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밤 Jul 05. 2023

한여름의 불청객, 블랙베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자연이라고 해봤자
바다, 산 그게 전부인 줄 알았지

기다리던 밴쿠버의 여름이 왔다. 회색빛 하늘이 사라진 쨍한 햇살에 나와 아이들의 마음은 들썩거렸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쿵!!! 털썩… 바스락, 바스락”


저녁을 먹고 난 후였다. 무언가 쓰러지는듯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차고지 안에 자리한 우리 집은 문을 열면 바로 밖으로 이어진다. 깜짝 놀란 우리는 문뒤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끊이지 않는 바스락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손에 땀이 났다.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움켜쥐고 문을 홱 열었다.


“뭐… 지?  저 검은 건… 으….. 으….. 아아아아아!!!!!”


내 등뒤에서 고개를 빠꼼히 내민 아이들이 떨리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엄마.. 설마.. 곰이야???? 곰이.. 우리 쓰레기통을.. ”


황급히 문을 닫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도통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까만 곰이었다. 그것도 두 마리. 한 마리는 몸짓이 제법 큰 걸로 보아 어미곰 같았고, 한 마리는 새끼곰인 듯했다. 쿵 소리는 어미곰이 커다란 음식물 쓰레기통을 쓰러뜨리는 소리였고, 바스락 소리는 두 곰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들을 헤집는 소리였다.


여기 정말 캐나다가 맞는구나. 산이 아닌 집 앞에서, 그것도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있는 곰을 볼 줄이야.




먹을 것이 있음을 알게 된 곰은 영특하게도 그 장소를 기억한다. 이후로 쓰레기통은 자물쇠로 잠겼지만 밤늦은 시각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을 몇 번 더 들었고, 그때마다 두려움에 떨며 소리가 잦아지길 기다렸다.


어느 날은 상쾌한 마음으로 기지개를 켜며 문을 열었는데 어미곰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우리 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밤에만 오던 녀석이 이른 아침부터 찾아오다니, 정말 너무한다 싶어 가~가~ 가~~!!!! 정신없이 소리를 지르고 냅다 집으로 뛰쳐 들어왔다.  


내 정신이 이상해진 걸까..? 곰한테 소리를 지르다니…


곰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우리도 자연의 한 일부분일 뿐이다


곰이 나온다는 것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곰이 나타났던 곳이라는 싸인이 여기저기 붙어있다. 하지만 먹을 것이 부족해진 곰들은 이전보다 더 자주 마을로 내려왔고, 곰이 나타나더라도 사람들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곰이 스스로 사라지길 기다렸다.


곰이 자꾸 나타나서 쓰레기통을 부순다고 하소연하자 더 튼튼한 고리가 달린 쓰레기통으로 바꾸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블랙곰은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먼저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위협적으로 행동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했다.


야생동물이 나타났을 때 내가 생각했던 해결방법은 더 이상 사람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포획을 하던지 계속 오면 안 된다는 신호를 주기 위해 동물들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캐나다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곳은 본래 ‘곰’이 살고 있던 곳이고, ‘우리’는 그들의 터전인 이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곰이 마을로 내려오는 것도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을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곰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도록 쓰레기통을 잘 관리하면 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애초에 곰이 머무는 산속에 먹을 것이 풍부했다면, 곰은 우리 집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위협받고 있던 것은 곰이었다.  불청객은 곰이 아닌, 나였다.


이전 08화 다양성의 존중은 어디까지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