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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Jul 05. 2023

여행이 일상인가, 일상이 여행인가

여행 안의 또 다른 여행



새까맣게 탄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눈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또다시 우리에게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2주간의 미국여행이 끝나는 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나는 생각했다. 라스베이거스-그랜드캐년-샌디에이고-디즈니랜드-LA-샌프란시스코까지 과연 가능할까, 싶었던 여행이 드디어 끝났다. 무엇보다 이 여행이 의미 있었던 것은 우리끼리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온몸으로 도시들을 부딪혔기 때문이다.


혼자였으면 불가능한 여행이었다. 내가 캐나다에 간다는 소식을 들은 지인이 여름에 함께 미국으로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십 년 전 해외봉사활동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지인과 나는 젊은 시절의 열정적인 시간들을 서로 기억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그때의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엄마 둘, 아이 셋은 사람수만큼의 캐리어를 끌고 미국 서부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여행이 특별했던 이유는 또 있다. 지인과 나는 차를 렌트하지 않고 비행기, 버스, 기차, 우버까지 다양한 교통편을 이용하여 여행을 했다. 차가 있었다면 조금 더 많은 곳을 방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기억하는 여행은 멋진 관광지가 아닌 함께한 시간의 순간들이다.


그랜드 캐년 정말 멋있지 않았었냐고 묻자 아이는 뜬금없이 포켓몬카드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홀슈밴드를 보러 갔을 때 눈앞의 절경 앞에 아이들은 쪼그리고 앉아 포켓몬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위 위로 올라가서 라이온킹 심바처럼 포즈를 취하곤 깔깔거렸다.


샌디에이고에서는 카드놀이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시간이 남아 커피를 한잔 하려는데, 아이들이 공항 바닥에 주저앉아 카드놀이를 시작했다. 얼룩덜룩 까만 얼굴에 꾀죄죄한 옷. 영락없는 여행객의 행색이었다.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바라보며 감상에 젖어있을 때 아이들은 거세게 부는 바람에 부풀어 오른 옷을 가리키며 누구 배가 더 커지는지 내기했다. 와하하하, 웃음이 번졌다. 그 밝고 자유로웠던 순간은 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순 없었다. 그래도 그리피스 천문대의 야경은 포기할 수 없었다. 반쯤 잠이 들어버린 둘째 아이를 품에 안고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높은 건물이 없는 엘에이의 야경은 마치 별을 수놓은 것처럼 반짝였다. 첫째 아이가 와서 가만히 내게 몸을 기댔다. 따뜻했다.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나는 지금 엘에이의 밤을 바라보고 있다.  훗날 아이와 나는 이 순간을 얼마나 그리워할까.


난 밴쿠버의 ‘여행자’가 아닌 ‘관광객‘이었다


미국여행을 마치고 비행기가 밴쿠버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아이들은 환호했다.


“엄마, 다시 돌아왔어! 우리 집으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시 돌아온 밴쿠버는 정겹고 따스했다. 이전에는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밴쿠버의 구석구석이 익숙하고 편했다.


어디선가 그런 글귀를 보았다. 여행자는 자신이 언제 집으로 돌아올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관광객은 떠나기도 전부터 돌아올 것을 생각한다고. 그동안 난 일 년 후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늘 조급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 아름답게 물드는 붉은 하늘을 보면서도 더 멋지고 새로운 곳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머물러 있는 밴쿠버에서의 시간들이, 늘 지나는 이 거리가 내가 그토록 바라던 ‘여행’의 한 순간인 것을 잊고 있었다.




나의 일상은 지금 캐나다에 있고, 캐나다에서 나는 여행을 한다.  일상과 여행의 그 어딘가에서, 나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여행이 일상인지, 일상이 여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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