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인권 교육
Everyone deserves live free No matter
Who they are or Whom they love
‘LGBTQ에 친화적인 곳’ 아이 뮤직스쿨에 대한 안내를 보고 있는데 낯선 단어가 눈에 띈다. 찾아보니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의 줄임말이다. 성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캐나다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다.
이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이슈는 주로 뉴스를 통해 접했다. 퀴어축제가 열리냐 마냐를 두고 극심하게 대립하는 모습들. 그것이 이 용어에 대한 내 첫 느낌이었고, 나와는 동떨어진 일이라 생각했다.
그때 아이의 피아노 선생님이 오셨다. 환하게 웃고 계신 선생님을 보고 난 잠시 멈춰 섰다. 학원의 안내문은 그냥 쓰여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당황스러웠던 첫 만남과 달리 선생님은 아이에게 귀를 기울여주시며 따뜻하게 대해 주시는 좋은 분이셨다.
그리고 난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것들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성소수자’에 대해 알고 있던 게 없었을 뿐,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느 날 길을 걷는데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레인보우기야. 우리도 학교에서 레인보우 행사한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은행에도, 레스토랑에도, 카페에도 무지개 색깔의 레인보우기가 걸려 있다.
“엄마, 레인보우기에는 남색이 없어. 알고 있었어?”
레인보우기가 뭔지도 몰랐던 난 그걸 알고 있는 아이가 더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아이 학교에서 레인보우 행사를 한다며 염색을 위한 흰 티셔츠를 보내달라고 했다. 학교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자 색색깔의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알록달록 교내 곳곳에 그려져 있던 레인보우들. 그때서야 알아챘다. 이 레인보우기는 LGBTQ를 의미하는 것임을.
‘다름’을 인정하면
우리는 모두 자랑스러워진다
LGBTQ는 한국에서 공론화하기 어려운 주제다. 이 용어를 꺼내는 순간 어디선가 거부와 반대라는 깃발을 들고 공격해 올 것만 같다.
하지만 캐나다에서는 이를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논하고 있다. 보편적 행복을 위해 우리가 누려야 할 많은 것들 중 성정체성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에게 남자냐, 여자냐를 묻지 않고 어떤 성별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무엇보다 정해지거나 강요된 것이 아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준다.
이러한 교육의 방향은 비단 성정체성뿐만 아니라 인종, 언어, 종교적인 문제를 포함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캐나다의 ‘모자이크 문화’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과 달리 캐나다는 각자의 고유한 문화들이 자리 잡아 한데 모여있다. 다양한 색이 존재하는 곳에서 자신의 색깔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색도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나의 것이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고 하는 순간 모두가 다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다름’에 ‘틀림’으로 대응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순간 나도 그들도 함께 자랑스러워질 수 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성소수자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인생을 살든, 어떤 선택을 하든 서로 존중해 준다면 모두 멋진 결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