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뭉치가 되는 건 한순간
한 번도 상처 입은 적 없다면,
지금껏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것이다
캐나다를 오겠다고 결정한 후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운전’이었다. 초보로 동네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낯선 캐나다에서 운전을 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게 캐나다는 간절했다. 두려웠지만 난 기꺼이 운전대를 잡았다.
봄바람이 살랑이던 5월이었다. 다운타운에서 빵을 사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려던 찰나, 쾅하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휘청거렸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났다. 설마…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열리지 않았다. 차문이 찌그러져 고장 나 버린 것이다. 다른 문을 통해 겨우 차에서 내렸을 때, 상대방 운전자로 보이는 젊은 외국인 남성이 다가왔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뒷좌석의 아이들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뭘 해야 하지…? 누구에게 연락해야 하지?
보험사를 부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캐나다에서는 사건을 접수하고, 소명하는 것까지 모두 운전자가 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고의 목격자를 확보해야 한다. 상대방 운전자가 부지런히 주변 사람들의 연락처를 받는 동안 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입 밖으로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하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아이들이 있잖아.”
어떤 한국인 할머니 한 분이 내게 소리쳤다. 마침 길을 지나던 중이셨다면서 아이들을 보살펴주고 있을 테니 어서 사람들에게 목격자가 되어달라고 도움을 청하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이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키가 큰 외국인 남자가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내가 목격자가 되어줄게요. 이 명함으로 연락해요.”
머리가 곱슬한 빨간 머리의 아줌마도 헐레벌떡 뛰어왔다.
“건너편 건물에 살고 있어요. 전부는 아니지만 사고장면을 일부 촬영했어요. 필요하다면 영상을 건네줄게요.“
겨우 입을 떼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고 힘이 쭉 빠지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그 모든 모습을 아이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제일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이다
밴쿠버에 있는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폭설로 집에 고립되기도 했고, 삽으로 눈을 퍼다가 손가락을 다치기도 했다. 강풍으로 나무가 쓰러져 온종일 정전인 집 밖을 떠돌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 너구리 떼를 만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괜찮아, 극복할 수 있어.’ 라며 스스로를 토닥였다.
하지만 이번일은 달랐다. 아이들이 다칠뻔했다. 캐나다로 오지 않았다면 겪지 않았을 위험한 사고를 나 때문에 아이들이 경험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만약 아이들이 다쳤다면? 그날 밤, 온갖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뒤척임에 첫째가 눈을 떴다.
“미안해, 엄마 때문에 깼구나. 오늘 많이 놀랐지. 어서 자.”
“엄마, 나 괜찮아. 엄마도 무서워하지 마. 우리 모두 안 다쳤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아이는 알고 있었다.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는 걸. 어른인 엄마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는 걸. 엄마에게도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캐나다에 온 것은 내 선택이다. 그 선택 안에는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다.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들은 모두 현실이 아닌 생각일 뿐이다. 그러니 아이 말대로, 난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이 제일 불행하다고 느낄 때는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려고 이 곳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