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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밤 Jul 05. 2023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하다

아이들의 영어 변화기



엄마, 방금 어떤 말이 떠올랐는데
영어로 생각이 났어


밴쿠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이었다. 내 손을 잡고 조용히 걷던 둘째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생각한 것이 영어로 떠오른다고. 한국나이로 7세. 캐나다에 온 지 한 달도 채 안된 이 아이는 영어를 이미 언어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둘째는 ‘귀’로 영어를 처음 접한 아이다. 첫째가 7살, 둘째가 4살 되던 해부터 아이들에게 영어만화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한글만화에 익숙해있던 첫째는 어색해했지만, 만화의 재미를 이제 막 알게 된 둘째에게 영어만화는 그냥 ‘만화’ 일뿐이었다.


아이는 만화를 볼 때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반복적으로 보고 싶어 했다. 머릿속에 화면과 대사가 그대로 떠오를 정도가 되어서야 다른 걸 찾아보았다. 같은 내용만 고집스럽게 파고드는 둘째가 걱정되기도 하였지만, 캐나다에 와서야 이 습관이 아이의 영어귀를 열리게 하는 열쇠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따스한 햇살이 점점 길어지던 5월의 어느 날, 둘째가 첫째에게 영어로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던 첫째도 슬그머니 영어로 대답하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보면 아이들은 한국어로 대답해 주었지만, 둘은 이내 영어로 대화했다. 내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학교도 아닌 집에서 일상언어를 왜 영어로 하는 것일까?


아이들은 ‘캐나다는 영어를 쓰는 곳이기 때문에’라고 하였다. 이곳에서 쓰는 영어는 책이나 문제집 속의 문장들이 아닌 생생한 일상의 언어다. 그리고 선생님, 친구들과의 소통을 이어주는 도구이다.


결국 시간이 쌓여야 하고
기다려주어야 하고, 즐거워야 한다


한국에서 첫째는 영어독서를 숙제로 내주는 학원에 다녔고, 둘째는 오전엔 한국어, 오후에는 파닉스 수업을 하는 유치원에 다녔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아이들은 매일 영어만화를 보고, 영어책을 읽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국에서 아이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캐나다에 온 지 5개월 만에 아이들은 영어를 일상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나는 이것이 한국에서부터 꾸준히 쌓은 영어만화와 영어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 오면서 꽤 많은 영어책을 가지고 왔다. 그중 해리포터와 더스토리오브 더월드는 먼지 쌓인 채로 방치되었던 책들이다. 여느 엄마들이 그렇듯 나 또한 해리포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책 읽기를 즐겨하는 첫째에게 내심 기대를 품고 일찍이 책을 사두었지만, 아이는 손 한번 대지 않았고 그렇게 먼 캐나다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첫째가 해리포터를 읽기 시작한 건 4월 중순쯤이었다. 반 친구 중에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데, 같은 책을 매일 읽는다면서 그렇게 재밌는 책인가,라고 물어봤다. 우리 집에도 같은 책이 있어.라고 하자 아이는 눈이 동그래지며 책을 집어 들었다. 이후 아이는 책표지가 너덜 해질 때까지 해리포터에 푹 빠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첫째에게 영어책은 더 이상 숙제가 아닌 즐거운 여가이자,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가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책들을 자연스럽게 찾아 읽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두 달 전쯤 마침내 더스토리오브 더월드를 읽기 시작했다.




가기 전에는 책 읽을 시간이 있을까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아이들은 캐나다로 가져간 영어책들을 모두 읽었다. 그것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나는 시기의 문제일 뿐 한국이었더라도 첫째가 해리포터를 읽게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해리포터를 읽느냐, 안 읽느냐 하는 문제는 이 책이 갖는 상징성 때문일 뿐, 다른 책을 통해서도 아이는 얼마든지 영어책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캐나다에 와서 겪은 아이들의 영어 성장이 이곳에 와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 년간의 캐나다 생활로 아이들의 영어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한국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꾸준히 쌓아왔던 시간들이 캐나다에 와서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다녀왔기 때문에.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동안 노력해 온 시간들을 알기에 아이들의 영어 성장은 값진 ‘보상’이라 생각한다. 


캐나다를 다녀온 이후 아이들의 ‘영어‘는 이전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 그 배움의 여정에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는 아이들을 응원하며, 나 또한 아이들과 발맞추어 한 걸음씩 앞을 향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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