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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Oct 07. 2020

당장 10분 후도 예측할 수 없어서 떡볶이를 먹었다

스물세 살, 혼자 여행했던 추억

<2부 떡볶이>

 스물세 살 겨울, 나는 ‘대4병’에 걸려 있었다. ‘대4병’은 대학교 4학년 때 걸리는 병으로 '진로에 대한 막막함', '지금까지 해놓은 것이 없는 것 같은 허무함', '미래를 상상해도 전혀 그려지지 않음' 등이 복합적으로 느껴져서 살짝 위축되어 있는 시기를 말한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혼란스러워하다가 갑자기 결심한 것이 ‘혼자 여행해보자!’였다. 당시에는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도 않았고 심지어 지도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내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 단 하나로 충동적으로 결심한 것이다. 장소는 내가 사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부산으로 정했다. 국내 여행을 다녔더라도 항상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갔었는데 부산을 ‘혼자서’ 가기로 한 것은 당시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2박 3일로 날짜만 정했다. 즉흥적으로 가기로 한 여행인지라 둘러볼 곳도, 잘 곳도 정하지 않았다. 당시에 기차를 타고 갔는데 옆자리에 앉은 가족이 하하 호호 웃으며 단란하게 둘러앉아 있는 모습에 마음이 얼마나 허전했는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철저하게 혼자가 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혼자 있고 싶어서 간 여행인데 시작부터 너무 쓸쓸했다. ‘이럴 거면 그냥 친구들이랑 올 걸 그랬나?’ ‘이게 여행이 맞나?’하면서 기차 안에서 후회했다. 앞으로 할 여행도 내 미래처럼 깜깜한 것 같았다. 딱히 할 것이 없어서 기차에서 휴대폰으로 부산에 어디가 유명한지 주요 관광지를 검색했다. 용두산 공원, BIFF 광장, 해운대 해수욕장 등을 가기로 정했다. 그리고 근처 게스트 하우스로 숙소를 잡았다.      


 도착해서 계획한 곳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 도착하니 그곳에서는 매일 저녁 투숙객들 사이에서 ‘파티’가 열린다고 하였다. 안 그래도 외로웠는데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다. 당시에는 재밌게 놀았던 것 같은데 사실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과 있으니 마음 한구석은 계속 불안했었다. 그래도 그곳에 묵는 사람들 역시 나와 또래였기에 다음 날 오전은 동행을 하기로 했다. 그 사람들은 다음 날 오전에 해동 용궁사와 오륙도 스카이워크를 간다고 했고 나도 따라가기로 했다. 그렇게 함께 오전 관광을 마치니 오후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있으면 생각도 정리가 되고 모든 것을 털어낼 줄 알았는데 막상 혼자가 되니 허전하고 막막했다. 다음 일정이나 계획도 없고, 어디를 가도 낯설기만 하고 길도 모르겠고, 내가 어디를 가든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괜스레 서글퍼져서 그냥 집으로 갈까 하고 돌아가는 차편을 검색했다.     


 그러다가 생각해낸 게 떡볶이였다. 떡볶이, 그래, 일단 떡볶이를 먹고 돌아갈지 남을지 생각하자! 핸드폰으로 부산에서 유명한 떡볶이 집을 검색해보았다. 검색 결과 ‘다리집’이라는 떡볶이 집이 유명하다고 하였다. 후기를 보니 사람들이 많아서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라고 했데 막상 열심히 지도를 보고 도착하니 평일이어서 그랬는지 한산하였다. 오징어 튀김도 유명하다고 해서 떡볶이와 함께 주문을 하고 기다리니 음식이 나왔다. 그런데 떡볶이 비주얼에 살짝 당황했다. 사진으로 보기는 했지만 정말 두꺼운 가래떡이 우리가 아는 잘게 썬 크기가 아니라 기다랗고 두꺼운 상태로 세 덩이만 나온 것이었다. 당황은 했지만 그래도 야무지게 집어서 한입 베어 무니, 그래도 ‘내가 아는 그 맛’이었다. 모든 게 낯설었던 부산 여행에서 떡의 쫄깃함과 매콤하고도 달콤한,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먹었던 그 맛이 나니 얼마나 안정감이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곳이 맛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알던 그 맛이 필요했다. 일정을 계획하지 않아서 당장 10분 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여행이 마치 나의 미래 같았는데 익숙한 맛 떡볶이를 먹으니 마치 ‘불안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옆 테이블을 보니 2명, 많으면 3명 정도가 먹는 그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을 앉은자리에서 혼자서 다 먹었다. 지금까지 서러웠던 감정을 다 먹는 것처럼. 다 먹고 나니 정말 배가 불렀는데 그래서인지 이왕 온 거 오늘 하룻밤은 자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다시 힘을 내서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가서 바다 구경도 하고 잊지 못할 광안리뷰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룻밤도 묵으면서 나의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혼자 여행’은 끝이 났다. 여행을 나름대로 성공적으로 끝마치니 처음에 부산에 그냥 ‘뚝’ 왔을 때는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몰라서 불안했는데 막상 여행을 하고 보니 어떻게든 끝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래가 지금 당장 보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길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렇게 '대4병'은 서서히 치유되었다. 언어도 안 통하는 해외여행도 아니고 그저 부산 여행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어떤 여행도 감수성 예민했던 대학교 4학년 시절 부산 여행만큼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지는 못 할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을 잘 끝마치기까지 감사 인사를 해야 할, 불안했던 마음에 안정감을 주어서 다시 일어날 힘을 주었던 다리집 떡볶이 집은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당시처럼 미래가 불안해진다면 다시 혼자서 찾아가서 위로받고 싶은 떡볶이 집이다. 떡볶이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다리집 떡볶이 집은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이기에 이렇게 적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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