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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Oct 05. 2020

식은 떡볶이가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

무의미한 날들이 모여 유의미한 내가 되니까

<2부 떡볶이>


  요즘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양이 엄청 많아 저녁에 먹으면 꼭 남기게 된다. 그러면 다음날 나의 아침 식사는 자연스레 식은 떡볶이이다.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어제 남은 식은 떡볶이를 한입 먹어본다. 그리고 도저히 딱딱해져서 먹을 수 없으면 데워먹지만 먹을 만하다면 그냥 식은 채로 먹는다. 신기하게도 오히려 식은 떡볶이가 엊저녁에 먹었던 뜨거운 떡볶이보다 더 맛있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오는 프랜차이즈 떡볶이는 열기가 쉽게 식지 않아서 먹는 내내 뜨겁다. 떡볶이가 뜨거울 때는 뜨거운 것을 입안에서 식히느라 정작 맛을 음미하지 못하고 삼키는 경우가 많다. 너무 뜨거워서 떡볶이의 맛보다는 ‘허허’ 식히는 데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식은 떡볶이를 먹으면 새벽 특유의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와 시간이 지나 딱딱해진 떡볶이의 식감이 꽤 잘 어우러진다. 뜨거웠을 때보다 식은 후에 떡볶이의 쫄깃하고도 매콤 달달한 맛이 더 잘 느껴지는 것이다.               

     ‘떡볶이가 원래 이런 맛이었지.’      

 조용한 새벽에 식은 떡볶이를 먹고 있으면 잠이 깨면서 꿈과 현실 세계가 섞인 몽롱한 상태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갑자기 떡볶이와 인생을 연관 짓고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나름대로 살고 있다. 매일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살아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1년이 된다. 그런데 매일매일 일상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저녁에 몇 장씩 책을 읽어도 갑자기 지식이 쌓인다든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시간을 정해 운동을 해도 당장 멋진 몸매로 변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다. 또 여행을 할 때도 그렇다. 여행하는 그 순간에는 지금 내가 좋아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여행은 거의 온종일 야외에서 돌아다녀야 해서 여행하는 순간은 솔직히 늘 피곤하다. 또 자는 것은 어떤가. 아무리 좋은 숙소라도 낯선 곳에서는 내 집 침대에서만큼 푹 잠들기는 어렵다. 심지어 다음 날은 일정이 있기에 늦잠도 자지 못하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여행하는 동안에는 문득문득 ‘지친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면 언젠가 써먹을 날이 온다. 누군가와 대화하다가 어떤 화제를 만났을 때 ‘어? 나 이거 어디서 봤는데?’하는 순간이 꼭 온다. 운동을 할 때도 운동을 꾸준히 할 때는 알지 못 하지만 운동을 잠시라도 쉬면 지금까지 운동을 했기 때문에 찌뿌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다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집에 온 순간부터 다시 여행 가고 싶어 진다. 사진들을 하나 둘 넘겨보며 그때 그 추억들을 떠올린다. 정말 신기하게도 여행 ‘중’에는 잘 느끼지 못 하지만 여행 ‘후’에 여행의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 내가 얼마나 자유로웠으며 그때 내가 이방인으로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뜨거울 때는 식히느라 정작 맛을 느끼지 못하다가 식었을 때 더 맛있는 떡볶이처럼 모든 일은 지나고 난 다음에 그 의미를 깨닫게 되는 건 아닐까. 새벽에 떡볶이를 우물우물 먹으며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보고는 출근 시간이 늦었음을 깨닫고 후다닥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 준비를 하며 또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며 투덜대며 옷을 입고 머리를 빗고 화장을 한다. 그리고 또 출근을 해서 흐름에 몸을 맡기며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 모든 일과가 다 지나고 밤이 되면 '아, 오늘 아침부터 참 분주했던 하루였다. 그래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네. 참 고생했다.'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 없어 보이는 하루하루가 모여서 ‘아, 이십 대 후반은 내 인생에서 어떠 어떠한 의미였다.’라고 깨닫게 되겠지. 식은 떡볶이가 더 맛있는 이유는 뜨거웠기 때문이니까. 그러니 내일도, 내일모레도 살아내보자.


(덧, 그래도 아침에 식은 떡볶이를 먹는 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다. 나도 고치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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