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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보라 Sep 28. 2020

계획한 대로 안 풀리면 떡볶이를 드세요!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

<2부 떡볶이>

 여느 때처럼 떡볶이를 먹는데 갑자기 떡볶이가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음식인지 궁금해졌다. 요즘은 외국인들도 유튜브에서 떡볶이 먹는 방송을 하기도 하고, 외국에 떡볶이 프랜차이즈도 있다던데. 우리나라 음식인 것은 아는데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궁금해져서 인터넷으로 떡볶이의 유래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떡볶이의 탄생에 대한 검색 내용을 쭉 읽다 보니 ‘떡볶이도 똑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4년 전 겨울 일이다. 초, 중, 고를 거쳐 대학교 입시까지. 짜여진 커리큘럼대로 살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대학교 졸업반. 대학교를 졸업하면 당연히 취업하고 돈 버는 건 줄 알았다. 그런 나에게 ‘계획대로 되지 않던 첫 경험’은 교원 임용 시험의 실패였다.


 어렵사리 몇 번의 도전 끝에 붙은 시험. 합격했으니 이제 퇴근 후 외국어도 배워보고 필라테스도 해보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가끔 맥주도 마시면서 저녁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계획했다. 그런데 웬걸. 첫 발령지는 반나절 정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도시와는 거리가 먼 섬마을 학교였다. 게다가 관사에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충격. 또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2년 후에는 도시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원래 여행을 좋아했기에 이제는 정말로 주말마다 자유롭게 국내 여행을 다녀야겠다고 생각했고 20대에 유럽 여행을 해보는 것이 버킷리스트였기 때문에 해외여행도 계획했다. 이리저리 비행기 표도 알아보던 차였다. 그런데 하……. 코로나. 이건 정말 예상 못 했다.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즐겨 먹는 붉은 고추장 떡볶이는 1950년대 마복림 씨가 중국 음식점에서 가래떡을 먹으려다 실수로 가래떡을 짜장면 그릇에 떨어뜨렸는데 의외로 맛이 좋아서 이를 아이디어로 가래떡을 고추장과 춘장을 섞은 양념과 함께 볶은 것이 시작이라고 한다. 떡과 고추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이 음식을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니. 그러고 보면 우리가 흔하게 먹는 대패 삼겹살도 백종원 씨가 돼지고기 써는 기계를 햄 전용 육절기로 잘못 사서 돼지고기가 얇게 말려서 나오게 된 것이 유래라고 한다. 마복림 씨는 가래떡을 그냥 먹으려고 했었고 백종원 씨는 돼지고기 써는 기계를 사려고 했다. 이들이 계획한 대로 마복림 씨는 아무것도 묻지 않은 가래떡을 먹고 백종원 씨는 돼지고기 전용 기계를 샀다면 우리는 평생 떡볶이, 대패 삼겹살을 못 먹었을지도 모른다.



 4년 전 겨울, 나는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오만하게도 나보다 많이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큰 점수 차이로 떨어지고 나자 이제야 주변이 보였다. 나보다 몇 배는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개론서, 아직 모르는 이론들, 내가 풀지 못했던 문제들. 다시 겸손하게 기본부터 배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자세를 배웠다.    

  

 배를 타고 반나절 들어가야 하는 섬마을 학교. 처음에는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야 하는 것이 너무 슬펐다. 그리고 내가 꿈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 없다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그 학교에 가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소중한 제자들과 동료들이었다. 그리고 가장 잊을 수 없던 건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하늘, 바다, 별, 바람이었다. ‘그냥 밤하늘 보러 가자!’ 하면 볼 수 있었던 쏟아질 것 같은 별. ‘그냥 바다 가자!’ 하면 언제든 그 자리에 있었던 해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던 풍경들.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고 느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들을 마음에 담았다.     


 여행을 가겠다고 다짐했던 2020년. 예상치 못했던 전염병이 돌았다. 여행은커녕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20대가 지나기 전에 유럽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아마 어려울 것이다. 대신 남는 시간에 한 편, 두 편씩 글을 썼다. 잘 쓴 글은 아니지만 그냥 20대가 흘러가는 게 아쉬웠는데 무심코 지나가는 감정들을 조금씩 기록하니 뿌듯하다. 여행으로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2020년에 계획과 달리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예상치 못하게 글 쓰는 걸 시작하게 되었다. 덕분에 이렇게 진지하고 길게 글을 써본 건 처음이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가끔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속상하기도 하고 자책도 하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머릿속으로 상상도 못했던 길이니 선물처럼 생각하지도 못했던 멋진 일들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 같다. 마치 계획하지 않았던 고추장과 떡이 우연히 만나 이렇게나 맛있는 떡볶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도 일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으면 일단 떡볶이를 좀 먹고 위로를 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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